참혹한 한국전쟁 라디오 드라마로 되살려낸 ‘낙동강 전선’
상태바
참혹한 한국전쟁 라디오 드라마로 되살려낸 ‘낙동강 전선’
 [제작기] 안동MBC 한국전쟁 특별기획 ‘낙동강 전선’
지연작전 벌어진 경기 북부지역의 전투 상황에 주목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 기자 시각에서 참상 담아내
  • 강병규 안동MBC PD
  • 승인 2020.06.29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2일부터 50부작으로 방송되는 안동MBC '낙동강 전선'.
지난 22일부터 50부작으로 방송되는 안동MBC 라디오 드라마 '낙동강 전선'.

[PD저널=강병규 안동MBC PD] “우리는 5천 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지난 2018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펼쳐졌던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 벅차오르지 않았던 사람들이 없을 만큼 감동이었다. 라디오드라마를 기획하고서부터는 줄곧 이 장면을 가슴 한쪽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폭풍같이 몰아쳤던 <임청각> 방송을 마치고 난 후 라디오드라마의 매력에 빠져있던 나에게 6‧25전쟁 70주년이 다가왔다. 제안해주신 선배, 김순희 작가와 함께 상주문화원부터 찾았다. 상주 화령장전투를 기록한 분을 만났고, 계룡대 육군군사연구소를 방문해 소백산맥일대 산악지역에서 있었던 6‧25전쟁 초기 전투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6‧25전쟁하면 인천상륙작전, 맥아더장군, 서울수복, 1‧4후퇴, 중공군의 개입, 철원 백마고지전투 등이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인민군이 물밀 듯 내려오던 전쟁초기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경북 북부지역의 전투상황은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기를 주목했다. 지역공영방송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자 지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후퇴만 거듭해야 했던 전투에서 적을 물리치는 작전이 아니라 적의 진출 속도를 늦추는 지연작전이 전부였던 당시의 상황은 수없이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그 처절했던 내용들을 청취자들이 알았으면 했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드라마 기획의 시작이었다. 

이 지역 전투 상황을 기록한 방대한 자료에 파묻혀 있던 시기에 낭보가 찾아왔다. 김순희 작가가 찾은 <뉴욕 해럴드트리뷴>의 마거릿 히긴스 기자. 그녀는 300명이 넘는 한국전 종군기자들 중 유일한 여성이었고, 6개월여 취재했던 내용을 엮어 펴낸 책 <War in Korea>로 1951년 1월 퓰리처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자유를 위한 희생’으로 번역된 그녀의 책에는 사람을 향하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 곧바로 히긴스 기자를 화자로 설정한 후 그녀의 인류애적 시각을 드라마에 녹여 넣기로 했다. 

드라마 대본을 집필한 김순희 작가는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다큐멘터리 작가였다. 라디오드라마는 처음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정에 차있고 의욕이 넘쳐 수많은 자료를 섭렵해 줬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 향토음식을 심리적으로 가볍게 풀어쓴 <음식남녀 상열심사> 와 조선시대 조향사인 ‘향장’을, 안동의 서원문화와 함께 그려낸 <월령교, 잇꽃각시>로 경북 스토리콘텐츠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작가다.

유명하고 전문적인 드라마 작가도 많았지만 ‘지역공영방송’이 ‘지역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풀어내기 위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를 선택해 작업을 했다는 데 또 하나의 의미를 두고 싶다.

안동MBC 라디오 드라마 '낙동강 전선'에서 마거릿 히긴스 역을 맡은 박선영 성우가 열연하고 있는 모습. ⓒ강병규 PD
안동MBC 라디오 드라마 '낙동강 전선'에서 마거릿 히긴스 역을 맡은 박선영 성우가 열연하고 있는 모습. ⓒ강병규 PD

연기를 담당해 줄 성우들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설득력 있는 연기가 필요했기에 지난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드라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성우들과 함께 작업하기로 했다. 마거릿 히긴스 역에는 1997년 MBC 14기 성우로 데뷔, MBC 드라마대상 외화더빙상을 수상한 베테랑 박선영 성우를 확정해 드라마 전체 해설까지 맡겼다.

김일성, 맥아더 역에는 김기철, 이승만, 에치슨 장관 역에는 김용준, 이화령전투의 주인공 강소위 역에는 방성준, 죽령전투의 주역 마을소년 수찬 역에는 조경아, 독립운동가의 후손 만주 출신 지오 역에는 이번에 새로 합류한 고성일 성우가 연기했다. 특히 박선영 성우는 녹음 중 몇 번의 NG를 낼 정도로, 몰입한 나머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열연을 펼쳐줬다.

이번 드라마에는 음악에 비중을 더 크게 뒀다. 선곡만으로 전쟁드라마를 살리기에는 어렵겠다는 판단이었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기에 자칫 무거워만 질 것 같은 프로그램 분위기를 조금은 달리 가고 싶었다. 인디 팝 듀오 ‘바른생활’ 출신의 젊은 작곡가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최혜인 감독의 영입 역시 신의 한수였다. 천만 영화 <신과 함께>, <군함도>, <박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최혜인 음악감독은 녹음 때마다 성우들의 연기를 직접 확인하며 그때그때 드라마의 분위기를 체크해 음악적 영감을 창조해 내고 있다.

6‧25 한국전쟁 70주년에 맞춰 방송을 시작한 라디오 드라마 <낙동강 전선>은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의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죽령터널을 중심으로 민간인들과 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양-죽령전투, 백병전이 처참할 정도로 치열했던 문경 이화령전투, 민간인의 제보로 시작해 군관민의 합동작전으로 국군 1개 대대가 인민군 1개 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던 상주 화령장전투, 한국전 최초의 지게부대원들이 활약했고, 조선족 출신의 팔로군이 관측됐던 영주-풍기전투, 작전실패로 800명이 넘는 국군이 수장됐던 안동전투, 간호보조원으로 지원한 여교사들과 학도병들의 이야기 중심으로 펼쳐지는 영덕-포항전투 등 6개 지역 전투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지난 22일부터 시작한 라디오 드라마 <낙동강 전선>은 평일 저녁 6시45분 안동MBC 표준FM을 통해 방송되고 있으며, 같은 시각 유튜브를 통해 매회 공개되고 있다. 한국전쟁 초기 치열했던 전투와 처참했던 모습을 가감 없이 다루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대립과 갈등을 넘어 다시는 이런 참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연출해가고 있다.

제작진의 마음이 청취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50부작 막을 내리는 8월말까지는 긴장 속에 뜨거운 여름을 보낼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