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의 시간 
상태바
조문의 시간 
[라디오 큐시트] 조문 갈 일 많아졌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위로의 말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0.07.02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을 당한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경험이 쌓여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픽사베이
상을 당한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경험이 쌓여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픽사베이

[PD저널=박재철 CBS PD] 부의 소식을 접하면 안타까움도 잠시,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인다.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가끔이라도 소식을 주고받던 이들 혹은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온 이들인 경우에는 주저가 없다. 문제는 친분의 두께가 애매한 때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 부딪히려나?”, “내 일과 별로 얽히지도 않는데?”, “우리 집안 장례식장에는 왔던 분인가?” 이것저것 헤아리게 된다. 

요즘에는 조문 참석이 잦다 보니 봉투에 부의(賻儀)라는 한자말도 곧잘 쓰게 됐다. 그런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상을 당한 지인에게 건넬 위로의 말이다. 데면데면한 마음에 그냥 있기도 뭣해서 몇 마디 입에 올려보지만 내가 하고도 듣기 민망하다. 참 울림 없고 공허한 말들이다.

“힘내라.”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최대한 힘을 내고 있는 이에게 어쩌자고 더 힘을 내라고 채근하는가. 나를 응대하고 있는 지금도 바닥난 힘마저 소진하고 있는 중일 텐데 왜 힘내라는 뻔하고 밋밋한 말을 위로랍시고 건네고 있나. 즙이 빠진 레몬이요, 짠 내 빠진 소금 같은 말이다. 

“곧 좋아질 거다.” 무엇이 좋아진다는 것인가? 되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더구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생각해보면 참 무책임한 말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말일까. 지금 슬프고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고? 우산 없이 비 맞는 사람에게 ‘언젠가는 비가 그치고 해가 뜰 거’라고 한다면 그 허망함을 억누를 수 있을까. 

어느 글에서 읽었다. 이런 류의 위로는 나무나 바위에 그 끝을 매지 않고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지는 밧줄 같은 말이라고. 급한 마음에 던졌지만 결국 자신의 급한 마음만 구하는 말이라고.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라.” 이 말은 또 어떤가? 폭력적이다. 충분히 애도하고 자신의 슬픔을 천천히 잠재워야 할 사람에게 그런 시간마저 빼앗는 말이다. 날이 밝았으니 일터에 나가라고 새벽녘 쪽잠 자는 이에게 하는 발길질이다. 세상은 언제나 뒤에서 등 떠밀었다. 급하다고. 그래서 주위를 살필 겨를 없이 살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잃었다. 지금, 상실의 슬픔 속에서 하는 자맥질도 힘겹다. 그런데 또 빨리 빨리를 외치나? 털고 일어나봐야 어제의 일상이다. 경쟁하듯 쳇바퀴를 돌리는 일이다.

날카로운 슬픔을 대면하는 이에게 건네는 이런 무디고 무딘 위로의 말들이 정말 도움이 되는 말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창의 날카로움을 잠시나마 막아내는 방패의 든든함을 지녔는지 살피게 된다.

지난 5월 종영한 MBC '그 남자의 기억법' 화면 갈무리. ⓒMBC
지난 5월 종영한 MBC '그 남자의 기억법' 화면 갈무리. ⓒMBC

“힘내라, 곧 좋아질거야, 그러니 빨리 박차고 일어나라...” 물론, 격려와 희망을 전달하고픈 곡진한 마음들이 실린 선의의 수사임을 모르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의미에서 편하게 써왔던 표현들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가닿을지 솔직히 지금까지 깊이 고민해보지는 않았다. 나의 난처함을 모면하기 위해 손쉽게 선택했던 위로의 말들, 관습적으로 써온 그런 말들의 효용을 곰곰이 따져보니 새삼 참 부실하다 싶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 신철규의 <눈물의 중력> 중에서     

큰 슬픔 속에 놓인 사람에게는 사실 어떤 말도 불필요하지 않을까. 눈물의 무게를 못 이겨 엎드려 울 수밖에 없는 이를 진정 보듬을 수 있는 언어를 우리는 가지고 있을까. 찾기는 애쓰되 그전까지는 침묵하는 편에 서고자 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상실한 이에게 다가가 한번 꼬옥 말없이 안아주기로 한다. 다음 조문의 시간을 맞이할 때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