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혐오’ 조장 코로나19 보도에 "합리적 의심" 이라는 방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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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혐오’ 조장 코로나19 보도에 "합리적 의심" 이라는 방심위원
방심위 방송소위, 이태원 확진자 동선 전하며 “게이클럽” 설명한 MBN에 '법정제재' 의결
이상로 위원 "해당 클럽 특성이 전염병에 취약한지 의심할 수도"
  • 김윤정 기자
  • 승인 2020.07.08 20: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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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김윤정 기자] “많은 클럽 중에서 특정 클럽에서만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클럽의 특성이 전염병에 취약한 것인지 기자들이 의심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성소수자를 떠나서라도 어떤 전염병에 취약할 수 있는 구조적, 생물학적인 의심을 할 수 있지 않나.”

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 발생한 클럽을 ‘게이클럽’이라고 보도한 뉴스를 심의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이상로 위원이 한 발언이다. 성소수자 혐오와 편견을 조장한 보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높아진 인권 감수성과도 거리가 멀다. 

이날 방심위 방송심의소위원회에 오른 안건은 지난 5월 7일 방송된 MBN <MBN 종합뉴스>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이태원 클럽에 방문한 사실이 알려진 뒤, MBN은 <게이클럽 다녀간 뒤 확진…제2의 신천지 우려>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해당 클럽에는 성소수자가 다수 다녀갔다”고 언급했다. 성소수자들이 다수 다녀갔을 것으로 추측되는 클럽에 확진자가 다녀감에 따라 접촉자 파악이 어려워 제2의 신천지 사태가 우려된다는 요지였다. 해당 보도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1조 인권보호 1항의 적용을 받아 심의 대상이 됐다.

이상로 위원의 발언은 8일 방심위 방송소위에서 해당 안건 심의에 앞서 의견진술을 듣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위원은 의견진술을 위해 참석한 박대일 MBN 사회1부장에게 “보도 당시 (확진자가 다녀간) 그 클럽만 문을 열었나. 서울 시내 다른 클럽은 문을 열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박대일 부장이 “강남, 홍대 등 여러 클럽이 문을 열었다”고 답하자, 이 위원은 “문을 연 클럽이 여러 곳인데 그중 한 곳에서만 문제가 생겼다면 그 클럽이 가진 특성이 전염병에 취약한 특성이 있는지 기자로서 의심할 수도 있지 않나”, “전염병에 취약할 수 있는 구조적인, 생물학적 특징에 대해 의심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물었다. 박대일 부장이 “일부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답하자 이 위원은 “내 질문은 여기까지”라며 발언을 멈췄다.

이 위원의 발언은 코로나19가 성적 지향에 따라 확산된 것일 수도 있다는 혐오적 사고를 ‘기자라면 가질 법한 합리적 의심’으로 포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해당 보도는 지난 4월 28일 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과학기자연합회가 함께 제정한 ‘감염병 보도준칙’에 배치되고, 방역에도 도움이 안 되는 보도다. 당시 MBN뿐만 아니라 해당 클럽 방문자를 성소수자로 낙인찍는 보도가 쏟아지면서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수 심의위원은 이 점을 지적했다. 이소영 위원은 “MBN 보도 당시 성소수자들이 검사에 응하지 않아 접촉자 파악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징조가 있다는 보도는 실제 벌어진 상황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 의한 예측 보도였다”고 말했다. 

허미숙 방송소위 위원장은 “코로나19의 확산은 밀집 때문이지 성소수자 때문이 아니”라면서 “아직 우리나라에는 성소수자 혐오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누군가의 성적 지향을 당사자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재난보도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냉정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언론이 확진자나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확산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이상로 위원을 제외한 방송소위 위원 모두가 법정제재인 ‘주의’ 의견을 낸 가운데, 이 위원은 행정지도인 ‘권고’를 제시했다. ‘권고’ 또는 ‘의견제시’는 방송심의 관련 규정 위반 정도가 경미한 경우 내려지는 행정지도다.

이 위원은 “전염병의 역학조사는 확진자의 혈액형이나 지역 등 여러 가지를 추적해 들어간다. 그렇게 전염병 원인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고 의견을 피력한 뒤 “그것이 어떤 특정한 취향에 있는 사람에 국한해 한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은 별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박대일 MBN 사회1부장은 “신천지 사태가 지나간 후 방역의 어려움을 중점적으로 보도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가 미흡했다”면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상호를 비공개로 해야 한다는 방역 당국의 당부를 따르려 했는데, 작은 부분을 생각하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더 큰 부분을 간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사안을 다룰 때 단어 하나하나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 MBN의 보도 취지와 상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번지면서 2차 피해가 유발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같은 사안을 보도하며 기자가 ‘게이클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KBS창원 1AM <시사경남>에 대해서는 행정지도인 ‘권고’가 결정됐다. 보도의 전반적인 내용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전화 연결된 지역신문 기자가 돌발적으로 해당 표현을 사용한 점이 감안됐다. 

또, 고등학생인 등장인물이 성인 남성에게 기습 입맞춤을 하는 장면과 웹툰 작가인 등장인물이 신음소리를 내며 성인 웹툰을 그리는 장면 등을 방송해 약 6천400여 건의 민원이 쏟아진 SBS <편의점 샛별이>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를 자막으로 내보낸 SBS funE <왈가닥뷰티>에 대해서는 ‘의견진술’을 청취하기로 했다. ‘의견진술’은 방송사 관계자가 나와 경위와 과정을 밝히는 절차로, 위원들은 의견진술을 거쳐 방송심의 규정 위반 여부 등을 판단한다.

출연자가 영화 <주기자>의 마지막 장면을 소개하며 ‘쫄지마 X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TBS FM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에 대해서는 ‘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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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 2020-07-09 09:44:30
완전 합리적인 의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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