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리움’, 섬뜩한 탈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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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리움’, 섬뜩한 탈출 게임
  • 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 승인 2020.07.2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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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비바리움'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톰과 젬마. 함께 살 집을 구하러 여기저기 다녀보지만 집을 구하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우연히 들어선 부동산 중개소에서 ‘욘더’라는 독특한 마을의 집을 소개받고 중개인 마틴을 따라 ‘욘더’에 들어선다. 

중개소에 있던 미니어처와 똑같은 단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잘 손질된 앞마당과 깨끗하게 칠해진 집과 좁지 않은 거실과 태어날 아기를 위한 방까지 톰과 젬마를 맞이한다.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집은 아니어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그리고 뒷마당에 깔린 잔디와 테이블과 의자, 그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구름 한두 점은 그럴 듯 해 보인다. 

“모두 언제쯤 입주를 하게 되나요?” 마음이 살짝 동해 중개인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대답이 없다. 어디 갔을까, 이 사람? ‘자, 둘러볼 만큼 둘러 봤으니 우리도 돌아가자’며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탄다. 한참을 달렸건만 다시 9호 앞에 서 있는 자신들을 보면서 톰과 젬마는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9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일찍 집을 나서지만 그 날도 다음 날도 하루 종일 빙빙 돌다 다시 9호 앞으로 돌아와 버린다. 

그렇게 ‘욘더’에 갇히게 되는데, 두 사람 앞에 남자 아기가 들어 있는 박스가 배달된다. 아기를 다 키우면 풀려날 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상하고 괴상한 상황이지만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톰은 이제 매일 앞마당의 흙을 파낸다. 그렇게 파다보면 어디론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젬마는 아기를 돌본다. 매일 엄청난 속도로 자라는 아기는 곧 소년이 되고 곧 청년이 되었다. 톰과 젬마는 ‘욘더’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영화 '비바리움'
영화 '비바리움'

영화 <비바리움>의 포스터를 보면 단숨에 르네 마그리트를 떠올리게 된다. 구름 때문일까, ‘욘더’ 단지의 집의 모양 때문일까. 똑같은 모자, 똑같은 복장의 신사들이 가득 메운 넓은 하늘과 솜뭉치처럼 떠 있는 구름으로 기억되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그대로 <비바리움>의 주택단지 ‘욘더’다. 

로칸 피네건 감독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아 욘더를 구상했다고 한다. 개성을 잃은 사물, 획일성이 주는 기괴함과 공포, 무한 순환이 주는 압박감. 영화 <비바리움>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위해서는 이런 요소들이 필요했고 그 요소들을 시각화하는 데 가장 적합했던 것이 아마도 마그리트와 코르넬리스 에셔였을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대놓고 주제를 말해 준다. 아니 제목부터 영화의 내용과 전개가 예측 가능하다. 관찰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을 가두어 사육하는 공간, 비바리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비바리움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안에 톰과 젬마가 갇힌 것을 보면 비바리움을 통해 무언가 얻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끝내 실체는 밝혀지지 않으나 (그럼으로 해서 우리는 각자의 상상력을 동원해 비바리움 - 욘더의 주인 또는 운영 주체가 누구인지 그려볼 수 있다) 한정된 공간, 획일화된 장소에 갇혀 매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톰과 젬마를 보면서 폐쇄증을 느끼게 된다. 

우리 자신의 모습과 일상을 돌아보게 되는 건 일면 당연하다. 인류의 삶은 톰과 젬마의 욘더에서의 일상과 얼마나 크게 다른 걸까. 물론 우리의 현실 세계는 더 큰 공간, 더 많은 교류, 더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그 개개인의 일상을 압축하고 단순화해 본다면 욘더를 벗어나지 못하고 욘더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톰과 젬마의 일상과 아주 다르다고 말하지는 못할 듯하다. 슬프게도. 어디에선가 뒤틀린 현실과 몽환 그 어느 경계 즈음에서 펼쳐지는 톰과 젬마의 9호집에서의 나날들은 관객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지금’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실제로 피네건 감독이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들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로스트 하이웨이>, 제프 머피의 <조용한 지구> 등이라고 하니.

더구나 다른 새의 둥지에서 태어난 뻐꾸기가 다른 새들에게 어떤 짓을 하는 지 보여주는 시작 장면은 이 영화가 어디를 향해 갈지 너무나 확실하게 알려준다. 이렇게 거의 끝을 알려주며 시작하는 영화의 승부는, 그렇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인데 톰과 젬마의 입장에 이입이 되어 함께 고민하게 되는 걸 보면 <비바리움>의 장치가 그리 허술하지 않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간단하게, 빠져나올 수 없는 뒤틀린 시공간을 만들어 놓고 오싹함과 매혹을 동시에 풀어 놓으며 로칸 피네건 감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방식과 두려움의 대상 혹은 실체에 대한 질문을 던져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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