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 전에도 폭신폭신한 친구들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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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프로그램②] ‘방귀대장 뿡뿡이’ 엄마로 불렸지만, 이제는 친구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PD연합회가 주관한 ‘PD 글쓰기 캠프’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파주 출판단지 지지향에서 진행됐다. 자기 성찰과 프로그램 질적 향상을 위해 기획된 글쓰기 캠프에 참여한 PD들이 ‘내 인생의 프로그램’을 주제로 쓴 글을 차례로 싣는다. <편집자 주>   
지난 29일 방송된 EBS '방귀대장 뿡뿡이' 화면 갈무리.
지난 29일 방송된 EBS '방귀대장 뿡뿡이' 화면 갈무리.

[PD저널=남선숙 EBS PD] 모든 일은 숙제로부터 시작됐다. 매주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 허덕이던 PD들은 일 년에 한 차례 있는 사내 프로그램 기획안 공모에 시큰둥했고 급기야 예외 없이 ‘1인 1기획안’이라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숙제는 숙제답게! 배 깔고 엎드려 대학노트 두어 장을 쭈욱 찢었다. 입사 7년차 PD가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숙제, <방구대장 뿡뿡이>(방귀가 표준어인 것을 뒤늦게 알고 바로 잡은 제목이 <방귀대장 뿡뿡이>). 깐깐한 부장님의 숙제가 아니었다면 내 인생의 프로그램, 뿡뿡이는 없었다.   

다섯 살 때였던 것 같다. 동네에서 방귀 좀 뀐다는 한두 집에만 흑백텔레비전이 있던 시절, 동네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가 영화관 부럽지 않은 ‘안방극장’을 열곤 했었다. 어느 날, 한 살 터울인 오빠가 이웃집에서 TV를 보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쫓겨났다. 한창 재밌던 차에 쫓겨난 게 억울했던지 오빠는 서럽게 울었고, 장남의 눈물 바람에 울화통이 터진 아빠는 얇은 월급봉투를 열었다. 그날로 큼지막한 흑백텔레비전이 안방을 차지했다. 더 이상 TV를 찾아 이웃집을 전전할 필요가 없게 된 오빠와 나는 TV 값을 뽑고도 남을 TV홀릭이 됐다. 

그때 즐겨 보았던 프로그램인 <부리부리 박사>의 주제가를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나는 부리부리 박사, 도토리 세 알에 장미꽃 한 송이, 달님 속 계수나무 별똥별 하나 이것저것 끌어모아 발명을 한다. 발명을 한다.” 신기하게도 첫 소절을 끄집어내면 마지막까지 얼추 가사가 딸려 나온다.

이 프로그램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1976부터 3년 동안 KBS에서 방송된 ‘대한민국 최초의 탈인형 어린이 뮤지컬 프로그램’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부엉이 탈에 뿔테 안경을 쓴 부리부리 박사님이 커다란 기계에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넣으면 우당탕탕 새롭게 조합된 엉뚱한 발명품들이 튀어나왔다. <부리부리 박사> 외에 나의 최애 프로그램은 역사인형극이었다. 어사 박문수, 알에서 깨어난 박혁거세와 동명왕 등 역사와 설화 속 인물들을 나는 인형극으로 처음 만났다.    

“졸업 후 방송사 취업이 유망할 수도 있다”는 대학교 팸플릿의 소개 문구에 낚여 학과를 선택했다. 언제부터 PD가 되고 싶었는지, 왜 하필 PD가 되고 싶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고3이 되어서도 주말 신문을 받아들면 제일 처음 하던 일이 방송 프로그램 안내란에 놓치면 서운할 영화 몇 편과 <전설의 고향>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는 일이었다. 엄마와 나의 치열한 싸움은 TV를 끼고 주말을 보내는 나의 뒤통수를 찌르는 날카로운 음성에서 시작되곤 했다. “아예 TV 속으로 기어 들어가든지!” 엄마의 예언처럼 난 어느새 TV 속 세상으로 들어와 있었다.  

‘소비자 경제학’과 ‘아동교육학’ 교수님들이 모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도 애매한 ‘소비자 아동학과’를 나온 탓에 첫 발령부서는 EBS 어린이제작팀이었다. 뭐 뾰족하게 다큐멘터리를 지망한 건 아니지만 누구도 내게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냐고 묻지 않았다. 소비자 아동학과를 졸업한 새내기 PD는 그렇게 당연히 ‘아동이 소비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팀으로 배정되어 <딩동댕 유치원> 조연출을 맡았다. 이렇게 나는 <부리부리 박사>와 역사 속 인물들을 닮은 인형 친구들과 일하게 됐다. 

대학노트를 찢어 써내려갔던 <방귀대장 뿡뿡이> 기획안은 눈이 보배인 편성기획부원의 손에 의해 정갈하게 정리돼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당시 관리라인에서 ‘놀이대장 뿡뿡이’로 제목을 좀 점잖게 바꾸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방귀가 빠지는 순간 ‘앙꼬 없는 찐빵’이 된다는 주위의 응원과 ‘방귀가 뭐 꼭 더러운가요?’ 물으며 프로이드의 발달단계 중 항문기에 속하는 타겟 오디언스들에 대해 약간의 설을 풀어 <방귀대장 뿡뿡이>라는 타이틀을 고수할 수 있었다. 

2000년 봄에 방송이 시작됐다. 엉덩이를 화면에 들이대고 “안녕방귀, 뿌이뿌이 뿡~”을 외치며 인사 방귀를 뿜어대는 뿡뿡이에게 엽기캐릭터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었다. 그런 부정적인 게시판 글의 답변은 게으른 연출자보다 부지런한 시청자들의 몫이었다. ‘내용은 매우 교육적이다. 표피를 보지 말고 본질을 봐달라.’ 글을 올려주신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방귀로 인한 잡음은 곧 사라졌다.

뿡뿡이는 2020년 올해까지도 살아남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한때는 ‘뿡뿡이 엄마’로 불리기도 했지만 스무 해를 지내다 보니 ‘뿡뿡이’는 이제 자식이 아니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애니메이션 스타 뽀로로도 있고, 아기 상어도 있으나 물성을 가진 촌스런 뿡뿡이가 주는 감성은 다르다. 스튜디오로 놀러온 아이들은 호시탐탐 뿡뿡이 엉덩이를 만지려 했었다.

육감적인 엉덩이를 꾹꾹 찌르며 아이들이 뿡뿡이에게 묻고 했다. “너 어디서 살아? 방귀 나라는 어딨어?” 내가 부리부리 박사님을 추억하듯이 지금 스물네 살 청년들은 그렇게 뿡뿡이를 기억할까? 뿡뿡이 방송 초기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기억난다. “우리나라에도 대를 이어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 뿡뿡이의 기획자로서 그렇게 되길 소망한다.   

뿡뿡이 외에도 내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다. 느려도 너무 느려터져 답답하다는 평을 듣는 골든 리트리버를 닮은 ‘곰디’, 그에 반해 성질이 까칠하고 핫한, 리얼 강아지 보다 더 리얼한 비주얼을 소유한 강아지 ‘핫도그’, 도깨비와 인간이 결혼해 또 도깨비를 낳았다고 해서 붙여진 종족 ‘또깨비’들. 무지개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 꼬리와 귀와 뿔에 무지개 자국을 가진 ‘해요’들까지, 내 인생의 친구들은 모두 폭신폭신하다. 꼭 뿡뿡이가 아니어도 좋다.

우리 아이들 옆에 계속 폭신폭신한 인형 친구들이 있을 수만 있다면 뿡뿡이가 아닌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낯선데 친숙하고 이상한데 귀여워서 어딘가에는 재밌는 세상이 있다고 상상할 수 있도록 틈을 내어주는 친구들, 엄마에게 혼나고 세상이 자신에게 물렁하지 않을 때,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나고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용기도 내어볼 수 있는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친구들, 난 여전히 그 친구들이 사랑스럽다. 

나는 감히 생각한다. 인형 캐릭터를 보고 만지고 친구 삼을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아이들은 불행하다고. 난 뿡뿡이가 살아있는 친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한다. 그 반짝이는 눈들이 나를 가슴 설레게 한다. 인형들은 다 똑같아 보이는 이 세상 말고 또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음을 상상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인형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날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울해지기도 한다. 내가 어릴 때 함께 했던 본격 역사 인형드라마를 제작하는 게 어려워졌고, 그것은 아이들의 불행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인형들을 깎고 거기에 생명을 부여하는 파트너들, 바로 인형 제작자와 인형 연기자들이다. 조연출 때 처음 만났던 ‘인형 언니’들 중 몇 분은 지금까지 함께 서로가 늙어가는 것을 지켜봐 주며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그 언니들의 손에 인형이 들려지면 인형은 더 이상 인형이 아니다. 생명이 반짝이는 친구가 되어 호흡한다. 몇십년을 봐도 그 신기한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평생 유아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새내기 연출자들이 희박하듯 인형 제작과 연기의 노하우를 전수 받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허리를 한쪽으로 꺾고 두 손을 올려 몇 시간이고 인형을 살아 움직이게 해줄 인형 언니들이 이제는 많이 없다. 환경호르몬이 걱정되는 스폰지를 일일이 깎아내고 거기에 천을 한땀 한땀 입혀 인형 친구들을 탄생시켜줄 인형 제작의 장인들, 특히 방송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게 제작해줄 제작자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열악한 유아 프로그램 제작비 환경과 육체적으로도 어려운 일이기에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 없는 게 현실이다.   

나는 지금도 인형들과 일을 한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펭수는 물론 후배들의 몫이므로 예외지만. 현빈과 방탄소년단과 일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폼나는 <다큐 프라임>을 제작하겠다고 기획안을 쓸 수도 있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요즘도 인형들이 손을 반짝반짝 들며 오디션을 벌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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