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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필독도서 32] ‘가짜뉴스 경제학’
  • 오학준 SBS PD
  • 승인 2020.08.03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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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구독 안내 메일 문구. 월 구독료가 3달러, 특별할인가는 2달러까지 내려간다.
뉴욕타임스의 구독 안내 문구. 월 구독료가 3달러, 특별할인가는 2달러까지 내려간다.

[PD저널=오학준 SBS PD] 며칠 전 <뉴욕타임스>에서 메일이 왔다. “$0.50 a week for the facts.”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한 달 구독료를 월 2$에 맞춰주겠다는 제안이 담겨 있었다. 잠시 솔깃했다. 가짜뉴스의 시대에 양질의 뉴스를 푼돈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니까. 한편으론 당황스러웠다. 매출이 유지가 될까? 실제로 뉴욕 타임스는 2000년대 초반에 비해 구독자 수가 5배가량 늘었지만 매출은 오히려 절반으로 줄었다. ‘사실’의 가격은 2$면 충분한 것일까.

사실의 가격이 급락하는 이면엔 번성하는 가짜뉴스 시장이 있다.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자극적인 정보들이 ‘대안적 진실’이라는 이름을 달고 번성한다.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진 정보라도 구독자들의 후원을 받기엔 충분하다. 저널리즘 윤리의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팩트 체크’는 이를 근절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필요한 건 가짜뉴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미디어 산업의 구조를 파악하는 ‘정치경제학’이다.

노혜령의 <가짜뉴스 경제학>은 가짜뉴스의 ‘정치경제학’을 이해하기 위해 들춰볼 만한 책이다. 저자는 대중매체 산업의 성공을 가능케 한 다양한 경제적 조건들을 분석하고, 그 요인들의 변화가 대중매체 산업의 위기와 가짜뉴스 산업의 번성을 가능케 하는 또 다른 조건이 되었음을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대중매체의 혁신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지를 예측한다.

뉴스는 공공재의 성격을 지닌다. 공짜로 보는 사람을 막을 수도, 동시에 여럿이 보는 일을 막을 수도 없으니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기 어렵다. 신문만으로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했던 초기 신문업자들은 인쇄업이나 소매상을 겸업했다. 정치 보도가 가능해지면 정당과 정부의 후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는 신문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이해관계가 비교적 통일된 다수의 중산층이 등장하고 나서야 대중매체는 존재의 기반을 얻었다. 사업자들은 적자 수준으로 신문의 가격을 낮춰 독자를 확보하는 대신, 지면에 광고를 실어 부족한 비용을 충당했다. 정파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해,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저널리즘 관행은 광고에 의존하는 사업 모델을 보조하는 수단이었다.

탐사보도는 뉴스 상품을 차별화하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다만 제작비가 비싸 사업자들은 연성 뉴스와 함께 묶어 팔기를 원했고, 이 ‘뉴스 종합 세트’의 수준을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사람을 찾게 됐다. 유능한 기자와 편집자, 그리고 이 뉴스를 대량으로 인쇄할 수 있는 신식 윤전기는 미디어 산업의 재정 장벽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중산층 독자, 광고 의존 모델, 과점체제, 기반시설에 대한 국가보조가 대중매체 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조건이었다고 말한다.

노혜령의 '가짜뉴스 경제학'
노혜령의 '가짜뉴스 경제학'

조건이 변했다. 대량생산 체제의 종말과 함께 중산층은 파편화되었고 불평등은 심화됐다. 이해관계와 가치관은 다양해졌고, 기존 사회 제도들에 대한 신뢰가 하락했다. 저자가 보기에 독자의 해체와 취재원의 신뢰도 하락은 영미식 저널리즘의 보도 관행이 지니던 산업적 효용의 상실로 이어진다. 

디지털 플랫폼은 뉴스를 개별 기사 단위로 파편화해 플랫폼에 유통시킴으로써, 자신들만의 사업 모델의 일부로 뉴스 기사를 편입시킨다. 기존의 대중 매체 사업자들은 게이트키핑의 권한과 고유한 사업 모델을 상실했다. 디지털 매체들은 큰 비용 없이 비슷한 기사를 양산할 수 있었다. 모두가 비슷하니 눈에 띄기 위해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달거나 정치적 팬덤에 기대게 된다.

이로써 독자, 사업 모델, 진입 장벽 모두 사라진다. 디지털 플랫폼은 사실상의 기반시설처럼 작동하지만, 국가가 독점해 저렴하게 제공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독자적 사업 모델을 가지는 사적 영역으로 남아 있다. 올드 미디어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던 모든 요소들은 해체된 셈이다.

뉴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만 이 많은 뉴스들 가운데 무엇이 좋은 정보인지 찾는 일은 고되다. 인지 노동을 줄이고자 타인의 판단에 기대지만 믿을만한 길잡이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종합적 판단이 더없이 필요해진 시대지만, 디지털 플랫폼은 파편화를 가속시킨다. 가짜뉴스의 경제적 조건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저자가 보기에 가짜뉴스는 디지털 시대의 고유한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기존 제도의 정당성 위기와 맞물리면 등장하는 필연적인 파열음이다. 오늘날의 가짜뉴스 현상 역시 기존의 매체들이 정당성을 의심받고, 사회적 변화의 열망이 새로운 기술 위에서 확산되며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러니 규제보다는 대중매체의 신뢰 회복이 먼저일 수 있다.

뉴스 산업의 본질은 “그날의 세상사에 대한 신뢰할만한 해설을 제공하는 게이트키핑”이라는 저자의 지적을 곱씹어본다.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 요구에 양질의 정보를 가져다줄 수 있어야 신뢰는 회복된다. 저자는 정교한 독자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 게이트키핑의 핵심이라 말한다. 독자가 누군지 알아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몇몇 미디어 기업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AI 알고리즘을 개발하거나 구입하고 있다. 이를 관전할 여유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대중매체와 대중 사이의 거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건 아쉽다.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이끌 필요는 없지만, 대중의 편견을 확대 반복할 이유도 없다. 사실 보도에 헌신한 기자들은 대중매체가 광고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신뢰 회복은 정교한 독자 데이터뿐만 아니라 새 저널리즘 관행의 형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지적할 필요는 있다.

올드 미디어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여전히 대중매체가 가지는 영향력이 공동체의 민주주의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큼,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대중매체에 남은 역할일 것이다. 정교한 독자 데이터 분석만큼 윤리적 태도 역시 겸비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지속 가능한 대안적 사업 모델이다. 많은 기업들이 시도했지만 구독 모델이든 디지털 사업 다각화든, 순수 디지털 미디어의 개발이든 광고에 의존하는 기존의 사업 모델을 대체할만한 수익을 내진 못했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 위에 있다. 이제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 왔는지 따져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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