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되는 평론, 약이 되는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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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되는 평론, 약이 되는 평론
매몰찬 언어, 원론적인 프로그램 비판에 화가 나기도
창작의 과정에 대한 존중·이해가 있는 평론 많아졌으면
  • 허항 MBC PD
  • 승인 2020.08.1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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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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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허항 MBC PD] 대학 시절부터 거의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사 읽던 영화 주간지가 있었다. 영화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기자들과 평론가들이 매주 유려한 평론의 향연을 펼치는 잡지였다. 잘 만든 영화, 이를테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 같은 영화에 대해서는 몇 주에 걸쳐 화려한 호평기사가 실리곤 했다. 반대로 일부 영화에 대해서는 다소 매몰찬 언어들로 혹평을 보냈던 기억이다. ‘평가할 가치도 없는 영화’, ‘(영화 보는)시간이 아깝다’ 등의 원색적인 표현들도 왕왕 보였다. 

오랜 시간 탐독하던 그 잡지를 나도 모르게 멀리 하기 시작한 것은, PD가 되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부터인 것 같다. 잡지 속에서 간간히 만나는 매서운 혹평들이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필자들이 진지한 고찰과 해박한 지식으로 쓴 글들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한 혹평에 대해서는 ‘뭘 그렇게까지 비판하나’, ‘저런 단어를 쓰다니 영화감독 정말 상처 받겠네’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 편히 평론을 읽을 수 없었다. 어느 새 영화감독이라는 ‘창작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얼마 전, 밴드 새소년의 보컬 황소윤씨가 어느 평론가를 향한 저격글을 올렸다. 한 음악 전문 웹진에서 해당 평론가가 새소년의 EP앨범 수록곡 ‘심야행’에 대해 혹평을 한 것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글이었다. 해당 평론을 찾아보았다. 

‘연주와 멜로디가 극히 단출하다’, ‘보컬의 불편함이 크다’, ‘진보는 없고 답보 혹은 퇴보의 느낌이다’...등의 원색적인 비판의 문장들이 평론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평론가는, 몇몇 외국 뮤지션들의 이름과 곡 제목을 나열하며, 해당 곡들을 레퍼런스로 삼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지적했다. 

과격한 표현 자체도 당황스러웠지만, 평론가가 하고픈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기 힘든 평론이라고 느꼈다. 어떤 면이 불편한 것인지, 퇴보의 느낌이 든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미흡해 보이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불분명했다. 평론가가 새소년에 대해 억하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로, ‘아무튼 별로야!’라고 던지는 듯한 짧은 글이었다. 

황소윤씨는 본인의 SNS에  ‘정말 창작가들을 뭘로 보고’ 라는 표현을 시작으로 공개 반박문을 게시했다. 그는 ‘평가나 잣대를 들이댈 거면 적어도 최선을 다해 본인의 것들을 표현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예민하고 공손한 언어'로 이야기하시길‘이라고 썼다. 짧은 글에서 그의 분노와 억울함 같은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 대해 너무 매몰찬 언어로 비판하는 평론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방어할 틈도 없이 깊은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다. “그렇게 ‘했어야 했다’”는 식의, 너무나 쉽게 이야기되는 원론적인 평가에 화가 났던 순간도 떠오른다. 특히,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거나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프로그램에 대해 비난에 가까운 평론 글이 올라온 것을 보면, 겨우 다독여온 내 안의 자신감이 하릴없이 꺾여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물며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직접 음악으로 만들어 내놓은 뮤지션 황소윤의 마음은 어땠을까. 당사자가 아닌 나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원색적인 평론이다. 이를 맞닥뜨렸을 때의 감정을 생각하면, 그의 반박문은 그나마 최대한 절제한 반응이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의 평론은 매우 중요하다. 대중들은 평론가의 일차적 평가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평론가들의 말과 글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너무 원색적인 표현의 평가들은 창작자들의 마음에 생각보다 더 큰 상처를 내는 것 같다.

나름의 고된 과정을 거쳐 조심스레 내놓은 창작물에 대해, 너무 날카로운 말들을 던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소윤의 표현대로 ‘예민하고 공손한 언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창작의 과정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있는 언어로 쓰인 평론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그런 평론들은 그 맛이 달든 쓰든 창작자들이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드는 데 좋은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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