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초대석 - 신 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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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초대석 - 신 문 선
월드컵은 끝나고
  • 승인 1998.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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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관우가 유비에게 돌아가려고 조조의 육관을 단기로 돌파하자 후세사람들은 그의 무용을 찬양하여 그를 신장(神將)이라 불렀다. 일부에서 육관의 장수들이 실제로 대단한 자들이 아니엇다는 점을 들어 관우의 능력을 폄하했으나 당대의 주류가치인 충절과 의리를 모티브로 하여 이미 완성된 관우의 신화를 어쩌지 못했다.
|contsmark1| 월드컵이 끝났다. 예상을 뒤엎고 프랑스가 승리했다. 세기의 선수 호나우도는 신기의 발재간을 나이키 광고에서 보여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호나우도를 쉽싸리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의 영광과 함께 그의 능력과 불운 역시 극적인 월드컵의 신화에 바쳐질 것이다. 바르트는 동기화되지 않은 신화는 없다고 했다. 호나우도가 아직 대중적으로 유효하다면 차기 월드컵까지 계속 스타로 부양될 것이다. 월드컵은 상업적으로 동기화되고 4년마다 갱신되고 재가공되는 신화이다. 과잉수식과 부풀리기는 월드컵에 대한 미덕이다.
|contsmark2|...해설자? 일종의 요리사 같은 게 아닐까? 주어진 소재를 가지고 누가 더 맛잇게 만드느냐가 좋은 요리사의 관건 이듯이 똑같은 경기를 누가 더 재미있게 전달하느냐, 다시 말해 시청자들에게 강한 임펙트를 줄 수 있느냐가 좋은 해설자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contsmark3| 이번 월드컵의 한국적(?) 차원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은 차범근 감독과 축구해설가 신문선 씨다. 신 씨는 자유자재의 달변과 박심함 시청자들의 정서를 쥐고 흔드는 능란한 감정연기 등으로 일약 인기스타가 되었다. 그런점에서 보면 침묵속에서 몰락한 차 감독과 대조를 이룬다. 그는 월드컵이 항상 새롭게 포장되고 광고되어 져야 하는 상품임을 간파, 해설을 판촉과 동일시한 최초의 축구해설자이다.
|contsmark4| ...월드컵은 날 때부터 상업적이었다. 아마추어, 프로를 막론하고 진정한 챔피언을 가려내자는 월드컵 탄생의 목적이었다. 상업주의는 프로들의 싸움에서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우이나라도 12억원 가량의 배당금을 받았지만 현대 스포츠는 돈 그 자체이다...
|contsmark5| 월드컵은 소비된다. 직접적인 사용 가치를 갖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보들리야르의 말을 빌리면 소비되는 기호이다. 기호소비는 특정 사물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기호간의 "차이"에 대한 욕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차이란 어떤 형태의 소비를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고 타자와 경계되는 자신만의 지위와 위세룰 너타내는 것을 말한다. "붉은 악마들", "울트라 닛뽄" "훌리건" 등 이른바 "나만의 혹은 우리만의 축구보기" 태도는 그러한 욕구에 다름 아니다. "신문선"표 해설도 일종의 "차이화"된 소비이다. 그가 펴는 해설의 장에 가담하면 똑같은 월드컵경기가 축구 이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차이화"는 완전하고 독자적인 개성화가 아니다. 일정한 모델과 코드에 따라 이루어진다. 개개인은 이 코드를 수동적으로 공유할 뿐이며 모델들은 산업적으로 만들어지고 주어진다. 이 점을 감지한 mbc는 대박을 터뜨렷고 그렇지 못햇던 kbs, sbs는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contsmark6| ...차감독이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할 부분은 경기의 패배보다도 미리 패배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들어갔다는 것, 팀의 분위기를 위축시켜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게 한 점이다. 그포츠라는게 비록 지더라도 이긴다고 말해야 하는것 아닌가. 또 하나 차 감독이 가진 풍부한 해외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축구의 대외적 이미지를 제고시켜야 했는데 그렇질 못했다. 잘 아시다시피 해외 언론에 가장 폐쇄적인 팀이 한국팀이었고 가장 인터뷰를 피한 감독이 한국 감독이었다...
|contsmark7| 해설만큼이나 단언적이다. 실제로 한국팀은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전력이었을까.
|contsmark8| ...충분히 가능했다고 본다. 이번 프랑스 월드컵의 경우 4년전이나 8년전에 비해 세계적 스타고 적었고 전체적으로 수준이 저하된 상태였다. 자신감만 있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으로 본다....
|contsmark9| fifa가 설정한 이번 프랑스월드컵의 상품 코드는 "레드 카드"였다. 참가선수들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새로운 컨셉에 따라 플레이해야 했다. 이 "차이"를 읽지 못한 팀이나 감독들은 가차없이 퇴출당했다. 바뀐 월드컵의 기호를 게임에 효과적으로 개입시키지 못했던 차 감독은 그렇게 떠났다. 설사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더라도 현재의 한국축구를 가지고 어떻게 해볼 수없었는 지 모르겠지만. 해설자는 자유롭다. 경기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선 그렇고 관객의 편, 구매자의 편에 서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월드컵이 상품이라면 신문선 해설위원이 차범근 감독보다는 분명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contsmark10| ...내 해설의 스타일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는것 잘 알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해설도 마케팅이 필요하다. 내 해설의 타켓이 되는 시청자 군을 나름대로 분석을 해서 그것에 대한 리서치, 취재를 한다. 내 해설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들에 맞추어 해설의 수위를 정한다. 축구는 단수한 경기가 아니다.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역사. 정치,사회,경제가 축구, 그것의 총화인 월드컵에 녹아있다. 나는 축구라는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고 보여주고 싶다. 때문에 경기용어 해설만 갖고는 충분한 축구해설이라고 볼 수 없다. 내가 해설한 경기의 시청률이 내 생각을 받쳐주고 있다. 그는 연예프로그램을 그만 둘 것이라 하였다. 한국 축구에 실제적으로 기여하고 싶은 바도 있고 또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하였다.(그는 현재 체육학 석사이다.)만족을 느낄 때 떠나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이번 월드컵이 끝남과 함께 그의 역할이 일정부분 다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잇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관객들은 축구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4년뒤에 그들은 이율배반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달라지고 발전된 한국축구를, 그렇지만 달리 보여줄 것 없는 한국 축구와 방송은 다시 해설자 신문선에게 바람 한번 더 잡아달라고 부탁하게 될런지 모른다. 부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는 소비자가 아니다. 생산라인에 서 있게 된다. 어쨌거나 이번 대회와는 구별되는 다른 기호를 고안하고 제시해야 한다. 요번 결승전을 앞두고 열린 테너 "빅쓰리"의 공연은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노쇠함으로 미루어 이 대회가 그들이 모이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우울한 예감때문에 더더욱. 모든것이 다시 시작되는 다음 세기 최초 월드컵의 신화를 어떻게 꾸며낼 수 있을지. "신문선"표 해설을 통해 우리는 차기 월드컵대회 역시 철저히 상업적 모티브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당위론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contsmark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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