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추구'·'피해자 중심주의' 양립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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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서울신문 내부 성폭력 사건 보도로 갈등 심화
앞다퉈 제정한 '성범죄 보도 준칙', 얼마나 체화됐나
"피해자 인권 문제로 바라보면 저널리즘 원칙과 조화 가능"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를 비롯한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 전화 관계자가 지난 7월 22일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를 비롯한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 전화 관계자가 지난 7월 22일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김윤정 기자]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최근 언론사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화두다. 

박재동 화백 ‘가짜 미투’ 기사를 쓴 <경향신문> 기자는 인사위원회에 회부됐고,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 법률대리인을 비판하는 칼럼을 작성한 <서울신문> 논설고문은 거취 결정을 하라는 기자들의 요구를 받고 있다.

권력형 성폭력 보도와 관련한 갈등은 두 언론사에서만 벌어진 문제는 아니다. 

최근 한 인터넷매체에서도 박원순 시장 성추행 피해자 변호인의 자격을 의심하는 기고글을 주요하게 배치했다가 사내 보도 감시기구의 규탄 성명이 나왔다. 한 전문지 기자는 "박원순 사망 사건으로 내부에서 여러 사람들이 혼란을 느낀 건 맞다"며 "박원순 시장 사망 이후 공적 보도를 두고 '2차 가해' 가능성을 지적한 여성 기자들과 데스크 사이에서 토론과 갈등이 오갔다"고 전했다. 

성인지 감수성 수용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 갈등이 언론사 내부에 그대로 투영된 모습이다. '사실 보도' 저널리즘의 원칙을 '미투 보도' 권력자의 성폭력 의혹 보도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피해자 중심주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평행선을 그린다. 젠더 이슈를 어떤 관점에서 보도해야 하는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갈등으로 비화한 측면이 크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중심주의’를 넘어 ‘지상주의’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며 “언론에 의한 ‘2차 가해’는 조심해야 하지만, ‘진실 추구’라는 언론의 대원칙을 버려서도 안 된다. 진실 규명을 통해 미투에 대한 혐오나 의심의 시선을 거두어내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이숙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실 확인’ 위주의 언론 관행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가해가 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저널리즘의 원칙은 하나가 아니고, 형식적 객관주의, 기계적 중립주의의 시선으로는 위계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성범죄의 구조적 모순적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경향신문사 사옥 앞에서 열린 '강진구 기자 징계 반대 기자회견'을 중계한 유튜브 채널 '김용민TV' 화면 갈무리.
지난 12일 경향신문사 사옥 앞에서 열린 '강진구 기자 징계 반대 기자회견'을 중계한 유튜브 채널 '김용민TV' 화면 갈무리.

차기 대선주자로 꼽힌 인물들이 성폭력으로 피소되면서 성폭력 범죄를 ‘정치적 이슈’로 바라보는 시각도 드러난다. 김어준 씨의 “미투를 공작의 시선으로 보면 다르게 보인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런 음모론적 주장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정봉주 전 의원 미투 때도 나왔다.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을 두고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최이숙 교수는 “권력·위계에 의한 젠더 폭력보다 정치공학적 문제가 우선한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여성에게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있고, 어떤 이익이나 누군가의 사주가 없어도 성폭력 피해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주장”이라고 평했다. 

몇해 전부터 언론사들이 높아진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해 만든 '성폭력 보도 준칙'이 일선 기자들에게 얼마나 체화됐는지도 의문을 남긴다. '성범죄 보도 준칙' 위반, 기사 무단 송고 등의 사유로 인사위에 회부된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는 “성범죄 보도 준칙은 피해자를 보호 원칙을 넘어 진실까지 묻어버리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언론인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점검하고, 성범죄 보도의 원칙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봉수 교수는 “기자들이 높은 수준의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지 않으면 언론 보도가 피해자에게 심각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만큼, 언론사와 교육기관이 이를 필수 소양으로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성인지 감수성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인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권 문제로 접근하면 저널리즘의 원칙과도 통합사고할 수 있다”고 했다.  강형철 교수는 “최근 발생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직무와 처한 상황을 보면, 무게중심이 한쪽에 쏠려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지 않나. 이럴 때 언론은 기계적 중립이나 원칙적 검증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무게 중심을 피해자 쪽으로 옮겨야 한다. 그게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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