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멜로와 스릴러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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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멜로와 스릴러의 줄다리기 
남편이 연쇄살인마라면? 기흭 의도 살린 연출과 대본, 연기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1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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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 현장포토.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 현장포토.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14년간 사랑해온 남편이 피도 눈물도 없는 연쇄살인마로 의심된다면?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은 드라마의 기획의도를 한 줄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키워드는 ‘사랑’과 ‘의심’이다. ‘의심’은 다른 말로 하면 ‘진실’이다. <악의 꽃>은 사랑과 진실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다루는 드라마다.

 백희성(이준기)은 평범한 금속공예가로서 차지원(문채원)과 결혼해 아이 백은하(정서연)를 둔 남편이자 아빠지만, 사실 실체를 숨기고 있다. 그의 앞에 나타난 김무진 기자(서현우)는 그가 백희성이 아니라 도현수(이준기)라는 걸 단박에 알아본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만 도현수는 아버지 도민석(최병모)이 끔찍한 연쇄살인범이라는 게 밝혀진 후 여러 소문과 함께 사라져버린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백희성이라는 이름으로 차지원의 남편이 되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 그래서 김무진을 자신의 작업실 지하에 감금한 백희성의 모습은 말 그대로 연쇄살인범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여기에 차지원이 강력계 형사라는 설정은 백희성과의 묘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즉 부부로서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은, 숨겨진 진실을 두고 그걸 숨기려는 백희성과 그걸 파헤치려는 차지원의 대결 구도라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조금씩 파헤쳐지기 시작한 진실의 틈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고 차지원은 백희성을 의심하게 된다. 그가 도민석의 아들 도현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차지원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사랑을 위해서는 진실을 덮어놔둬야 하지만, 진실에 대한 욕망은 그를 자꾸만 도현수 앞으로 나가게 만든다. 

<악의 꽃>이 흥미로운 이유는 백희성과 차지원의 관계를 통해 일종의 장르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위기에 처한 서로를 구하려는 마음이 액션에 담겨지면서도, 진실을 파헤치는 장면에선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사실 멜로와 스릴러의 결합은 자칫 잘못하면 멜로가 스릴러의 긴장감을 흩트리거나, 스릴러가 멜로의 달달함을 지워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두 장르적 결합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 현장포토. ⓒtvN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 현장포토. ⓒtvN

하지만 <악의 꽃>은 대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라는 삼박자를 통해 무난하게 연결시킴으로써 긴장감 있는 멜로와 달콤살벌한 스릴러를 구현해내고 있다. 백희성이 아버지 같은 끔찍한 연쇄살인범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그로인해 피해를 입고 과거로부터 도망친 인물처럼 느껴지는 건 멜로와 스릴러가 적절히 이어지게 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연쇄살인범이 아닐까 의심을 품게 하면서도, 사실은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들면서 차지원의 진실을 향한 추격이 어쩌면 백희성을 추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를 구원해주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 사랑과 진실 사이의 줄다리기라는 추상적일 수 있는 화학실험을 지하실을 숨긴 이층집의 공간 구조나 수면 아래 죽어가는 백희성을 구해내는 차지원의 모습을 통해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연출 등이 구현해낸다. 여기에 순식간에 눈빛을 바뀌는 이준기의 연기는 ‘멜로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실험을 완성시켜준다. 

그런데 <악의 꽃>의 이런 멜로와 스릴러가 더해지는 장르실험은 왜 시도되고 있는 걸까. 최근 들어 멜로나 스릴러 같은 장르에 이제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좀 더 새로운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멜로는 너무 많이 반복되어 이제 공식화된 면을 보일 정도다.

그래서 최근에는 KBS <동백꽃 필 무렵>에 ‘까불이’ 같은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듯 멜로가 스릴러와 섞이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악의 꽃>의 실험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멜로 스릴러라는 새로운 드라마의 영역이 열리고 있는 징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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