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초유의 ‘셧다운’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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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초유의 ‘셧다운’ 막전막후
[라디오 큐시트] 휴가기간에 터진 확진자 발생 소식
반대 의견 속 '사옥 폐쇄' 결정..."타이밍이 전부" 새삼 절감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0.08.24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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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부스 ⓒ픽사베이
라디오 부스 ⓒ픽사베이

[PD저널=박재철 CBS PD] 커다랗고 투명한 비커. 그 안에 담긴 물은 벽돌마냥 무겁고 조용하다. 날카로운 정으로 벽돌에 금을 내는 망치질. 물 위로 떨어지는 잉크 한 방울은 그랬다. 천천히 모세혈관이 뻗어나가듯 물속을 유영하는 잉크자국은 그 뒤에 공포감을 남기며 유유히 사방으로 번져 나갈 것이다. 비커 속에서 잉크물만 덜어낼 수 있을까.
 
'단톡방'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메시지를 봤을 때 머릿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이것이었다. 잔잔한 물속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
 
지난 18일 밤 8시경, 사내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방송계에선 초유의 일이었다. 신속해야 했고 과감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또 무엇을? 맘만 앞섰지 행동이 갈피를 못 잡는 건 당연지사. 마치 지도 없이 길을 찾는 일일텐데 선배 국장은 하나씩 차례차례 매듭지어 나갔다. 리더의 역할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판단과 선택 그리고 책임.

8월 중순이라 휴가 중인 간부들이 많았다. 문자만으로는 의견 조율이 더뎠다. 위급했기에 일단 의사 결정이 가능한 최소 인원이 모였다. 확진자의 동선과 접촉자 범위를 파악한 다음, 첫번째 결정은 당장 내일의 방송 여부였다.

세 개 채널의 시사와 뉴스, 음악방송을 어떻게 할지부터 판단해야 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기보단 내일 생방송을 하면서 하나씩 대응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확진자가 기자였기에 시사와 뉴스는 대체 프로를 편성하고, 음악프로는 최소 인원으로 제작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국장은 방송사를 폐쇄하고 준비된 예비 음악방송을 24시간 내보내자 했다. 하루의 시간 동안 접촉자들의 검진결과를 지켜보고 향후 대응 수위를 정하자는 생각이었다. 이런 일일수록 초기에 철저해야 하고 과감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낸 윗선을 설득했다. 결국 몇몇 부장들이 다음날 내보낼 프로그램을 나눠 편집해 업로드하기로 했다.  
 
두번째 결정은 대내외 메시지 관리였다. 벌써부터 해당 기자가 확진상태에서 8‧15 집회 취재를 나갔다는 가짜뉴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이 건에 관련해서는 100% 공개를 방침으로 가닥을 잡았다. SNS 시대다. 일관성 없는 해명이 불신을 키운다는 것을 되새겼다.

사내 구성원들도 불안해했으므로 진행되는 상황을 빠르고 정확히 공유해야 했고 청취자들에게도 가감 없는 뉴스 전달이 필요했다. 작든 크든 결정되는 사안들은 바로 바로 카카오톡과 보도자료로 알렸다. 의심되는 날짜에 방송한 출연자 모두에게 상황을 알리고 검진을 받게 했다. 타사 취재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공교롭게도 유력한 대선주자가 출연자 중에 포함돼 뉴스 파급력이 커지긴 했다.

더 낫게도 더 나쁘게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상황 설명이 최선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대중은 위기보다는 위기대처를 더 눈여겨본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발 빠른 선제적 조치가 더 이상의 신뢰 붕괴를 막는다.
 
한 명의 확진자 외에 추가 전염자가 없어 방송사 셧다운은 하루 반나절만에 풀렸다. 안도와 다행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조심스레 새어나왔다. 지금 코로나 19의 확장세는 걱정스런 수준이다. 아직 이른 반응이긴 하다. 그러나 큰 고비를 넘긴 건 사실이기에 조금 편해진 마음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진 않았다. 

한 사람의 삶에서 혹은 하나의 조직에서, 더 크게는 한 나라에서 예기치 못한 위기는 늘 순번 없이 다가온다. 매뉴얼이 없어도 낭패지만 현실이 매뉴얼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것도 맞다. 다만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광고 문구가 하나 있다. 오래전 잡지에서 우연히 본 시계 광고였는데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정말 이걸 놓치면 다 놓친다는 걸 매번 확인하게 된다.
 
Timing is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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