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읽냐고? 활자 매체만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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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바깥 활동을 자제하는 가운데 지난 4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 외국어 서적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바깥 활동을 자제하는 가운데 지난 4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에 외국어 서적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PD저널=박재철 CBS PD] 주간지의 생명주기는 일주일이다. 제때 물을 못줘 시들어가는 작은 화분의 식물마냥 책상 위에서 시들어가기 일쑤다. 정기구독을 해놓고도 바쁜 일과 탓에 고지서처럼 한쪽에 쌓여만 간다. 하루 맘먹고 공들인 심층 기사나 선호하는 필자의 글들만 골라, 몇 달치를 스윽 간추려 속독한 적도 여러 차례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주간지의 특집호는 남달랐다. 그 주의 뉴스와 시사를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21명의 작가 인터뷰만을 실었다. 21명의 대담자들이 문인 한사람씩을 선택해 모든 작품을 읽고 만나 글을 썼다. 일종의 전작주의적 인터뷰집이라고 할까? 

얇지만 가볍지 않은 글들이라 옆구리에 끼고 출퇴근하며 하루에 하나씩 곶감 빼먹듯 읽었다. 3주 남짓한 시간이 소소하게 즐거웠다. 나름의 소확행이었다. 동시대의 슬픔과 고통에 공명하는 작가들의 육성을 옮긴 문장도 좋았지만, 그들에게 뒤지지 않으려 수차례 매만졌을 인터뷰어들의 문장도 작가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도록 틈새를 넓혀주었다.

"아이들은 온 존재를 걸고 운다. 나도 모든 것을 걸고 절실하게 이야기하겠다는 뜻이다. 시는 느끼는 것이란 주장을 믿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시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모든 것이 걸리기도 한다."<신철규>

"제가 빵집 아들인데도 도넛의 동그라미는 메울 수 없어요. 그냥 열심히 도넛의 고리만 만들 뿐이죠. 정작 전달하고 싶은 건 가운데 빈 부분이지만, 그건 끝내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김연수>

"산문이 마라톤이라면 시는 춤과 같아요. 산문은 한걸음 한걸음 다 밟아서 가야 하지만 시는 비약과 상상으로 어디로든 다른 곳으로 점프해서 갈 수 있어요. 생각하면 늦어요. 생각하면서 춤추면 망해요." <박연준>

"표현력이 좋은 사람이 여러 감정을 잘 이겨내는 것 같아요. 모국어로 된 소설을 많이 읽어두면 예상하지 못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이를 잘 넘길 수 있지 않을까.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소설 속 표현이 도움 될 때가 있거든요." <정세랑>

"아버지는 어린 저를 데리고 우산도 없이 수건 하나 들고 야트막한 산길을 두 시간 정도 걸었어요. 맨몸으로 장대비를 맞으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탈’의 감각이죠. 그런 것들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미감’이에요." <박준>

"저는 한국사회에서 타인을 이해하도록 기대되는 집단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요. 약자들이 더 많이 이해를 강요받죠. 저는 어린 여자아이로 살면서 어쩌면 제가 살아야 하니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최은영>

21명의 작가 특집으로 꾸민 한겨레 1326호 표지. 

뭔가 생각에 있어서 변곡점이 필요할 때 활자 매체부터 찾는다.  잡지, 주간지, 계간지뿐만 아니라 단행본이나 전집 등에서 숙성시킬 만한 착상의 실마리를 얻곤 한다.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짬날 때마다 서점을 어슬렁거리며 진열된 책들을 훑어보면서 출판기획자들의 감각을 훔친다. 서점을 몇 바퀴 돌다보면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를 어렴풋이 일별할 수 있다. 때론 책 제목이나 목차 구성을 통해 신규 프로그램의 기획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시나 소설은 내러티브를 이끄는 작품 속 화자가 있고, 그 화자가 꼭 작가 자신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작가와 무관한 인물도 아니다. 그 둘을 하나로 엮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나지 않을까.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 속 화자는 작가의 어느 부분이 투영된 것인지, 화자는 작가의 결핍과 선망, 좌절과 희망을 어딘가에 숨긴 대상이니 책 속 화자의 문장과 작가의 육성을 씨줄과 날줄로 교차시키면 자연스레 작품론과 작가론이 깃든 어떤 것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가 떨어졌다 붙었다 하면서 의미를 만들어보려는 머릿속 톱니바퀴가 녹슨 이빨을 서서히 돌린다.
 
일상의 작은(이를테면 주간지 한권 같은)것들이 격발하는 흥미의 탄환이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떤 탄착점(가령 프로그램 기획안 같은)을 뚫고 지나갈 때,  가끔은 아주 가끔은 프로듀서라는 일의 진가를 남몰래 실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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