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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방송제작 현장을 떠나 있다. 연구소에 근무하는 만큼 이런 저런 세미나와 심포지엄, 포럼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적지 않다. 우리가 만드는 방송이 하나의 현상으로 분석되는 과정을 보는 일은 흥미롭다.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본다는 것이 어려운 만큼 객관적인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반추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최근에 몇몇 세미나에서 본 모습들은 실망스러웠다. 일부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논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부족한 글이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반론이나 토론은 아주 짧게 넘어간다. 이렇게 발표된 글들의 일부분이 신문 등 다른 매체를 통해 확산되고 이것이 여론을 끌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쯤 되면, 사실의 선택으로 인한 메시지의 왜곡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학회에서 모 기자가 kbs의 보도가 지나치게 여당에 편향되어있다는 지적에 대해, ‘열정적’으로 변론하였다. 즉 kbs 조직 구성원의 변화에 따른 변화이지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자의 ‘열정적인’ 태도였다. 한 학자가 기자의 열정적인 태도에 대해 저널리스트가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주관을 개입하니 문제라고 질책했다. 질책의 정도가 지나치게 ‘열정적이어서’ 지켜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기자의 열정적인 태도 못지않게 열정적인 학자의 열정,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객관적인 사실을 추구해야하는 기자나,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밝혀야 하는 학자나 동일한 의무를 가진 것은 아닐까?

물론 기자로서의 책무를 다 하고자 하는 기자의 열정적인 태도는 가치판단의 과정이 아니라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주변에서 기자의 태도에 대해 좀 더 냉정하고 차분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옹호하는 뜨거운 열정은 ‘전문직’으로서 저널리스트에게 오히려 바람직하게 보였다. 다음날 한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떴다. “kbs기자의 위험한 열정”

한 학자의 도식적인 pd저널리즘에 대한 비판 역시 설득력이 떨어졌다. 즉 그 학자는 저널리즘의 층위를 pd저널리즘과 기자저널리즘으로 나누고, 기자저널리즘의 전형을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 뉴스로 보고, pd저널리즘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다큐멘터리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이 분류가 말이 안되는 것은 기자 역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취재파일 4321 등), pd들도 뉴스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후에 이어지는 논지가 설득력을 잃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떴다. “언론학교수들 방송공정성 지적 pd제작 시사프로 편향적”

세미나의 문제는 연구방향뿐만 아니라 진행에서도 빈번하게 보인다. 세미나에서 논의되는 담론의 수준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것.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정파적이다. 이미 연구자와 발표자가 누구이냐에 따라, 연구 결과의 방향을 예측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세미나를 지켜보던 한 학자가 의사진행발언을 했다.

논의의 차원이 역사적 발전 방향이라고 하는 큰 관점이 아닌 정파적 차원으로만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토론들과 논의들이 반복되지만,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논의의 목적이라는 데조차도 합의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디어가 사회를 반영하는지, 미디어가 사회를 끌어가는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은 최근 입사시험문제로도 등장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제대로 사회를 반영하고 제대로 이끌어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만약 이끌어간다면). 제대로 사회의 전체적인 모습을 정확히 비추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미디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 논쟁이 한창이다. 리프만과 듀이의 미디어관으로 대표되는 이 논쟁에서 우리사회에 대한 함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에 기초한 증명 가능한 팩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리프만의 주장에 대해 듀이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이나 견해를 쏟아 부을 수 있는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혹시 우리사회와 미디어는 두 가지 다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2004년 한국 미디어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홍경수/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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