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 노동 착취 없는 혁신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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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필독도서 37]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지난 4월 29일 노동절을 맞아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서울 강남역에서 선릉역까지 오토바이 행진 전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집회와 총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난 4월 29일 노동절을 맞아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서울 강남역에서 선릉역까지 오토바이 행진 전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집회와 총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PD저널=오학준 SBS PD] 최근 한 배달업체는 배달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배차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이 배달노동자를 선택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도입 명분은 좋은데, 배달 노동자들은 이를 아직 신뢰하지 못한다. 동선이 비정상적으로 그려지거나, 예상 도착 시간이 부정확한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할당된 호출을 쉽게 거부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이동하다 보면,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고 하소연한다.

AI가 할당한 배달을 수행하다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져야 할까? 배달 노동자들은 이것은 업무 지시이니 사업자가 고용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업자는 반문할 것이다. AI를 노동 감독과 지시의 주체로 볼 수 있을까. 게다가 노동계약서를 쓰지도 않았다. 더 많은 영역에서 이와 비슷한 분쟁이 발생할 것이다. 이를 다루기에 현행 노조법 2조의 ‘근로자’ 정의로는 부족해 보인다.

몇몇 플랫폼 기업은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노동자 대신 파트너, 라이더, 러너라는 용어를 쓰고, 노동계약 대신 차량이나 장비를 대여해주고 사업자 간 계약을 맺거나, 업무 지시의 주체를 불명료하게 만드는 방식들이 대표적이다. 우리의 삶이 플랫폼 사업들 덕에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자성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노력을 ‘혁신’이라 부르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를 위한 플랫폼 자본주의는 불가능할까. 제레미아 아담스-프라슬은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에서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플랫폼 기업들이 지금처럼 노동법 바깥의 노동자들을 ‘사냥’하고, 사업 비용을 사회에 전가시키는 방법으로는 장기 지속할 수 없다고 본다. 대신 그 잠재력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 작동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제약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자가 보기에 플랫폼 자본주의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소비자들은 평점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불량품의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소규모 생산자들은 적은 비용으로 소비자들과 직접 연결 가능한 통로를 얻는다. 발달한 기술 덕택에 노동의 수요와 공급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조정된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고, 본업 이외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부가 수익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플랫폼 기업의 역설을 지적한다. 이들은 노동 유연성을 제한하는 다양한 의무들을 파괴하기 위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규제의 철폐를 요청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더욱 촘촘하게 통제하려 한다. 플랫폼 기업은 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단순히 연결하는 게 아니라 일정하게 통제한다. 한편으로는 자율성과 자기 결정의 신화를 조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불투명한 알고리즘으로 부여된 평점과 급여에 노동자들이 매달리게 만든다. 

제레미아스 아담스 프라슬이 쓴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제레미아스 아담스 프라슬이 쓴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저자는 발달된 기술과 감언이설을 걷어내고 나면 플랫폼 기업의 사업모델은 디지털 노동 중개 사업에 가깝다고 말한다. 19세기 항만 노동자들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미숙련 노동자들이 플랫폼이라는 강력한 중개자의 통제 아래에서 경쟁한다. 예전엔 드럼통에 피어 오르는 불 앞에서 새벽 5시에 사람들을 차에 태워갔다면, 이제는 핸드폰을 들고 ‘인터넷 봉고’를 기다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더 나은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대규모의 불안정한 노동자가 없다면 플랫폼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저자는 플랫폼 경제의 이익이 생산의 혁신이 아니라 노동자와 사회를 ‘착취’하는 데에서 나오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동시에 플랫폼 기업이 이야기하는 혁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혁신을 그만두고 더욱 강력한 중개자가 되는 데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그는 플랫폼 기업들이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산업에는 풍부한 잠재력과 부가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익을 얻고, 비용이 이용자와 사업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규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저자는 다양한 정책 패키지를 제안한다. 노동법을 확대 적용해 규제 차익거래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사업자가 비용을 사회에 떠넘기지 못하도록 하고, 산별노조가 임금 결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길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킥보드 때문에 점자 블록을 따라가던 시각장애인들이 킥보드에 걸려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사업자가 져야 할 부담을 우리가 납세자로서 대신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정 주차 영역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업체에 있었다면 대여 비용은 조금 올랐겠지만, 누군가 다치진 않았을 것이다. 싼 가격은 이처럼 이유가 있고, 플랫폼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실제 비용을 우리가 모른 채 분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야 한다.

데이비드 와일이 <균열 일터>에서 지적했던 바대로, 20세기 후반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뒤흔드는 ‘균열화’의 시대였다. 기업들이 사업장의 경계를 지우고 내부 부서를 외주화하며 흔들어놓은 경계가 플랫폼 기업들이 발견한 서식지였다. 플랫폼 노동이라 불리는 다양한 형태의 고용관계를 노동법의 적용 영역으로 포함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핵심적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더 나아가서 ‘외주’에 기대는 기업들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묻는 본질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책이 던지는 질문에 우리는 대답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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