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언제 끝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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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언제 끝나는가
[제작기] EBS '다큐프라임-60세 미만 출입금지'
'돌이켜보면 60대가 제일 좋았다'는 할머니
나이 듦을 꿈꾼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 이승주 EBS PD
  • 승인 2020.11.27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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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17일 방송된 EBS '다큐 프라임-60세 미만 출입금지'.
지난 16~17일 방송된 EBS '다큐 프라임-60세 미만 출입금지'.

[PD저널=이승주 EBS PD] 세상은 점점 효율적으로 변해간다. 오후 2시에 주문한 책은 오늘 밤에 도착하고, 얼굴만 갖다 대면 값비싼 물건도 3초 만에 결제할 수 있다. 콘텐츠 시장도 그렇다. 더 빠르게, 더 단순하게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것이 과제다. <60세 미만 출입 금지>는 그것에 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호흡은 길고 느리며, 거대한 위기나 악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였던 여자 셋의 함께 사는 소소한 일상을 나열할 뿐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나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녀의 하루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지만, 시간만은 부지런하여 그녀에게 벌써 96번째 겨울을 선물했다. 그녀가 60살에서 지금까지 흘러온 동안, 나는 태어났고, 학교에 갔고, 직장을 다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몇십 년째 혼자인 그녀의 일상은 가끔 지루해 보였다. 

그런 할머니가 몇 년 전 퇴직한 아들에게 “돌이켜보면 60대가 제일 좋았으니 재밌게 살아라”는 말을 건네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흔한 위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내가 틀렸음을 알게 됐다. 실제로 제작진과 만났던 수많은 60대 독거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항해 중인 탐험가들이었다.

<60세 미만 출입 금지> 기획 초기에는 ‘60세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라는 단순한 문제의식으로 시작했으나 부지런한 인생의 탐험가들을 만나며 이야기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확장됐다. 1부 ‘함께, 독거’가 한 달 셰어하우스 생활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60대 독거여성 세 명의 이야기라면  2부 ‘젊음의 결말’은 나의 할머니를 비롯한 오늘을 살아낸, 어제보다 늙고 내일보다 젊을 우리 모두의 나이 듦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젊음은 언제 끝나는가? 누구나 은퇴를 고민하고 노년을 말하지만 아무도 늙음을 소망하지 않는다. 늙음은 주방의 바퀴벌레처럼 대비하고 퇴치해야 할 대상이 됐다. 인간이 나이들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이 듦 그 자체가 혐오스러운 것이라면 이는 인간 모두에게 가혹한 일이다.

매 순간 늙어가는 우리에게 젊음은 신기루와도 같다. 28살도 취업의 문 앞에서 자신의 늙음을 원망하고, 60세도 문화센터 오전반에서는 막내가 된다. 시간은 만물을 통틀어 가장 부지런하고 공평한 개념이지만 인간이 시간에게 비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바로 나이 듦을 꿈꾸는 것.

나이 듦을 꿈꾼다는 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 TV 속 커리어우먼을 보며 서른을 꿈꿨다. 서른이 된 지금, 사실 그 TV 속 이야기들이 허무맹랑한 판타지였음을 안다. 하지만 서른을 꿈꾸며 지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꽤 행복했고, 내일이 오길 기대했다. 

EBS '60세 미만 출입금지' 방송 화면 갈무리.
EBS '60세 미만 출입금지' 방송 화면 갈무리.

나에게 TV가 그러했듯 <60세 미만 출입 금지>가 60대, 더 나아가 100세를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판타지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비록 현실을 가리는 쓸모없고 비효율적인 정신승리여도 좋다. 세상이 효율적이니까, 우리 인생 하나하나쯤은 비효율적인 꿈을 가지고 있어도 세상은 잘 굴러갈 것이다.

<60세 미만 출입 금지>의 엔딩 내레이션 “60세 이후의 삶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기에, 어떠한 나이로 살든 오늘의 젊음을 살아갈 당신을 위하여”라는 말은 영자, 경희 그리고 수아뿐 아니라 앞으로 30년은 더 꿈꾸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고 나 스스로 외치는 주문에 가까웠다. 오늘을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는 힘. 매일 늙어갈 우리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젊음은 아마 이것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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