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고공행진 ‘펜트하우스’, ‘SKY 캐슬’이 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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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고공행진 ‘펜트하우스’, ‘SKY 캐슬’이 되지 못한 이유
눈을 뗄 수 없는 김순옥 작가의 막장 드라마 세계...지난 7일 시청률 19.9% 기록
'고구마'와 '사이다' 오가는 전개의 위험성...부동산·교육 현실 문제까지 단순화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0.12.08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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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 포스터.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 포스터.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김순옥 작가다. 시대가 바뀌면 이른바 막장드라마를 쓰는 작가들도 변할 것이라 여겼지만 김순옥 작가는 완성도를 올리기보다는 자극의 강도를 높이는 쪽을 택했다. 이는 그의 신작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 첫 장면에서 드러났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삼성동 소재의 주상복합 헤라팰리스 고층에서 누군가에 의해 밀쳐져 추락하는 여고생 민설아(조수민)를 펜트하우스에 사는 심수련(이지아)이 목격하는 장면이다. 드라마는 이 민설아라는 이제 갓 고등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한 소녀가 헤라팰리스 사람들과 그 자녀들에게 갖가지 핍박과 폭력을 당하다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심지어 “집값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체마저 유기되는 지독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이 곳에 사는 천서진(김소연)이 심수련의 남편 주단태(엄기준)와 벌이는 불륜행각과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오윤희(유진)와의 악연도 비중있게 그려진다. 실력파 소프라노였지만 오윤희는 경쟁자였던 천서진에 의해 1등 트로피를 빼앗기고 성대마저 다쳐 성악을 포기하게 됐다.

결국 드라마는 김순옥 작가의 전매특허인 가족 복수극의 구도를 그려낸다. 죽은 민설아가 사실은 심수련의 친딸이었다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 배후에 남편 주단태와 천서진이 있으며 그들의 불륜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시작되는 피의 복수. 심수련과 오윤희는 공동의 목표로 손을 잡고 복수극의 서막을 올린다. 

사실 <펜트하우스>는 대한민국 0.1%의 특권의식을 가진 이들이 보여주는 속물근성과 허위의식을 드러내고, 이들의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JTBC <SKY캐슬>을 닮았다. 하지만 소재와 구도가 비슷해도 <펜트하우스>가 <SKY캐슬>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막장드라마 특유의 엉성한 개연성과 자극에 집중하는 방식 때문이다.

게다가 <펜트하우스>는 최근 들어 우리가 드라마를 ‘사이다’, ‘고구마’로 얘기하곤 하는 단선적이고 전형적인 방식들을 보여준다. 드라마 시작점에서는 어렵게 버텨내며 살아가는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갑질하는 헤라팰리스 사람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퍽퍽한 ‘고구마’를 억지로 먹인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분노하고 답답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고구마 전개의 답답함을 김순옥 작가는 오래 끌지 않는다. 바로 저들의 뒤통수를 치는 전개를 통해 시원한 ‘사이다’를 선사한다. 바닥으로 내몰렸던 오윤희가 복수를 꿈꾸게 된 심수련의 도움으로 큰돈을 벌고 주단태가 계획하던 재개발 지역의 노른자 부위에 ‘알박기’를 함으로써 헤라팰리스에 입주하게 되는 과정이 그렇다.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SBS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SBS

가족복수극의 틀에 ‘고구마’와 ‘사이다’를 반복해 보여주는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단순하지만 자극적이라서 시청자들이 쉽게 빠진다. 게다가 작품 내적인 룰이라고 할 수 있는 개연성이 무시되고 대신 작가의 의지로 전개되는 세계는, ‘고구마’의 끝에 반드시 ‘사이다’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만든다. 시청자들은 너무 단순해 결과가 뻔한 드라마라는 걸 알면서도 판타지에 중독된다. 그래서 <펜트하우스>를 욕을 하다가도 월화가 되면 저도 모르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고구마’와 ‘사이다’로 나누는 단선적인 방식은 여러모로 위험성이 있다. 먼저 작품을 너무나 단순화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그런 세계에 익숙하게 만든다. 지금도 이미 그렇지만, 드라마의 다양한 관전 포인트와 감상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그것보다 더 큰 위험은 이런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세계가 실제 다소 복잡할 수 있는 현실의 문제들(이를테면 부동산이나 교육문제 같은)마저 단순하게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세상이 어디 ‘고구마’와 ‘사이다’로 단순하게 양분될 수 있을까. 현실의 퍽퍽함이 싫지만 그것이 약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당장의 시원함이 독이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SKY 캐슬>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았던 건,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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