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 과장 없어 실감 나는 시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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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 과장 없어 실감 나는 시월드
카카오TV '며느라기', 평범한 며느리가 겪는 '격공 시월드'
극적인 에피소드 없이 20분 동안 풀어낸 리얼 드라마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0.12.25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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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공개되는 카카오TV '며느라기'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공개되는 카카오TV '며느라기'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사실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토록 많은 드라마에서 다뤄진 이른바 ‘시월드’가 그렇다. 주말드라마나 자극적인 막장드라마 속 ‘시월드’에서 시어머니들은 “너 까짓 게 감히” 같은 말들을 사용하며 며느리를 무시하고 핍박하는 비상식적인 인물들로 등장하곤 하는데, 과장돼서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걸 본 시청자들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저런 시어머니가 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고 그래서 자신도 결코 저런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제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는 것이지만 과연 실제로도 그럴까. 

카카오TV <며느라기>에서 박기동(문희경)은 막장드라마 속 시어머니와는 다른 인물이다. 대놓고 욕을 하거나, 경박한 말씨를 쓰지도 않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는 인물도 아니다. 그건 시아버지 무남천(김종구)이나 시누이 무미영(최윤라)은 물론이고 남편 무구영(권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며느리 민사린(박하선)은 처음부터 ‘시월드’를 실감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막장드라마 속의 풍경과 달리 너무나 평범하다는 점은 시월드의 세계가 얼마나 공고한가를 보여준다. 그건 너무나 가까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공기 같아서 그 속에서 며느리가 어떤 차별을 겪는가가 은폐되어 있다. 그래서 박기동이나 무남천 같은 시부모는 자신들이 무슨 차별을 하고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를 맞닥뜨린 며느리 민사린은 조금씩 체감한다. 시월드가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는 차별들을. 

예를 들어 박기동의 생신상을 차려주려 전날 시댁을 찾은 민사린은 시부모들의 다정다감함과는 사뭇 달리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낀다. 시댁 식구들이 모두 앉아 TV를 보고 있을 때 혼자 과일을 깎아 내오고, 먹고 남은 과일을 “너랑 나랑 한 개씩 먹어 치우자”라고 말하는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는 불편함의 실체를 마주한다. 굉장히 존중해주는 듯 보이지만 실상 ‘시월드’에서 자신은 그런 거나 ‘먹어치우는’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런 일들을 현실은 ‘착한 며느리’라 부르며 차별적인 노동을 강요한다. 드라마는 이런 현실을 착한 며느리 되기를 포기한 무구형의 형수 정혜린(백은혜)이 명절에 시댁의 실상을 ‘팩폭’하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술 드시고, 구영씨와 미영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고,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다들 너무 했다. 그리고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님이랑 같이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착하다는 말에 숨겨진 차별적인 노동의 실상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다. 

카카오TV '며느라기'의 한 장면
카카오TV '며느라기'의 한 장면

<며느라기>에는 굉장히 극화된 사건이나 이른바 ‘뒷목 잡게 만드는’ 빌런화된 시댁 식구들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저런 건 드라마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 치부하며 들여다보지 않았던 ‘시월드’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해준다. 그것은 누군가 나빠서 생겨난 세계가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문화들이 보이지 않게 일상 속에 당연한 일처럼 박혀있어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카카오TV가 가진 20분 남짓의 숏폼은 수신지 작가 원작 웹툰을 효과적으로 드라마화하는 데 일조했다. 일상 속 차별들을 포착하는 데 있어 거창한 극적 구성은 그다지 효과적일 수 없다. 짧아도 군더더기 없는 에피소드와 대사들로 일상 속 차별을 있는 그대로 담아놓는데 20분이라는 숏폼은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60분 남짓의 형식 속에서 어느 정도 고정화된 관습적 시선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그 틀을 깨는 효과도 있다. 일상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과 시선이 필요하다. 짧고 담담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격공’하는 ‘시월드’의 세계.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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