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분노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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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악마성·아동 피해 부각한 보도 여전
언론의 아동학대 시스템 감시 있었다면 '정인이법' 이미 논의 됐을 것

'정인이 사건' 피의자 입양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일주일 앞둔 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시민들이 보낸 조화가 놓여있다. ⓒ뉴시스
'정인이 사건' 피의자 입양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일주일 앞둔 6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시민들이 보낸 조화가 놓여있다. ⓒ뉴시스

[PD저널=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지난 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정인이는 왜 죽었나’편은 16개월 된 아동이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을 조명했다. 정인이는 피해아동의 이름이다.

그 방송을 시청한 몇몇 인플루언서(SNS에서 수만의 구독자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가 본인의 SNS에 “정인아 미안해” “정인아 사랑해” 헤시태그(#)를 붙이기 시작했고, 입양아동의 참혹한 죽음에 대한 뉴스가 보도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양부모에게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주장과 아동학대 신고를 접수하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양천경찰서의 담당경찰관을 파면하라는 요구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를 보냈다. 그리고 급기야 ‘정인이 굿즈’를 판매한다는 기사를 접하게 됐다. 아동학대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은 의도로, 그 내용을 담은 티셔츠를 판매하다는 것이다. 

방송 이후 불과 나흘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2014년에도 칠곡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새 엄마를 풀어주세요 - 소녀의 이상한 탄원서’라는 제목으로 다룬 바가 있다. 그 당시에도 계모에 의한 아동학대 사건보도가 과열되어 아동학대의 주체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 후 아동학대 신고 및 보호기관이 확대되고 법무부, 복지부, 지자체 등 행정기구와 법원, 검찰, 경찰이 참여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협력체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다룬 보도를 본 기억은 없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에 머물지 않고 책임 주체와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되었는지,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사후약방문’도 아니고, 대부분 문제를 들추는 일에만 집중한다.

그러니 2014년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가해자 개인의 악마성과 피해아동의 학대 피해를 자세히 보도한다. 시청자들의 분노와 동정이라는 감정을 움직이는 것으로 사건을 보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동학대 방지시스템에 대한 제대로 된 언론의 감시가 있었다면 아동학대에 처벌수위를 높인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포함한 아동학대방지관련 입법)이 조금 더 일찍 국회에서 논의되었는지도 모른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가해부모의 양육권에 흔들리지 않고 피해아동에게 적극적인 사회적 보호조치를 취했을지 모른다.

아동학대 수사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는 일에 더 많은 예산이 쓰였을 수도 있다. 아동에 대한 양육과 보호는 그 아동의 권리이자 사회적 의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했다면 말이다. 

지난 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예고화면 갈무리.
지난 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예고화면 갈무리.

새해 연휴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시민들은 자연스레 미디어 이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새해에 보다 많은 이웃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따뜻한 소망이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분노와 미안한 마음으로 확대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분노’와 ‘미안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피해아동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해자에 대한 신상공개와 혐오로 가는 것은 아동학대가 방지되고 예방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다 전문화된 신고센터가 보호기관과 협조적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점검하도록 하는 것, 아동복지 및 아동학대방지에 대한 권한과 예산이 잘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대중이 어떠한 관심이냐에 따라 입법과 행정기관이 제대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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