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리오네트', 짜릿한 반전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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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소년의 비밀은

영화 '마리오네트' 스틸컷.
영화 '마리오네트'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하얀 피부에 빨간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곱슬머리 소년의 외모는 무척이나 사랑스럽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에 누구라도 움찔거릴 수밖에 없다. 소년의 이름은 매니. 심리상담가 매리언이 맡게 된 소년이다. 전임자인 맥비티 선생은 아무런 기록이나 참고사항을 남겨 놓지 않았고 매리언은 어딘가 조금은 미심쩍은 듯 자신을 바라보는 이 곳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매니와의 상담을 시작한다. 

소년은 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검은색으로 죽죽 그어 내리는 직선이 날카롭다. 사건이나 사고의 한 장면을 담아낸 듯한 소년의 그림은 불온하고 위태롭다. 매니와의 시간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매리언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당혹감과 공포에 휩싸이고야 만다. 소년의 그림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아주 당당하고 직설적으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얘기를 한다. 양자역학에서 늘 인용되곤 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미시세계의 사건은 그것이 관측되기 전까지는 확률적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 독극물과 함께 상자 안에 넣어진 고양이는 살아 있을 수도 있고 죽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고양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중첩이라는 개념과 함께 양자의 세계에 적용해 보면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론이며 이 사고 실험은 또한 평행우주에 대한 개념을 슬쩍 엿보게 해준다. 

영화 속에서 독서회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생각하면 현실이 될까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이지만 (그리고 이 영화는 월터가 무슨 초능력자나 신 같은 존재여서 실제로 자신의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내용도 아니다. 하긴, 원제부터가 그런 의미가 아니니. 원제는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이다) 이 질문은 독서회 사람들에게 사뭇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이 곳으로 부임해 온 심리상담가 매리언은 영화 초반부터 꿈을 꾼다. 무의식과 뇌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보고 싶은 바람 때문에 꿈은 늘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 오지 않았던가. 더구나 매리언의 꿈은 반복된다. (혹은 반복되면서 조금씩 각색된다) 반복해서 꾸는 꿈은 분명 그 사람의 무의식과 관련이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는 것이니 매리언의 꿈과 사건이 자신의 ‘그림을 현실로 바꾸는’ 매니와 연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꿈과 그림과 슈뢰딩거의 고양이. <마리오네트>는 퍼즐 조각을 던져주고 관객들이 조각을 맞춰보기를 기다리며 관찰하는 영화다. 당신은 매니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게 될까. 매리언은 이 이상하고도 공포스러운 매니와 매니의 그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인지하고자 애쓴다. 바로 매니의 그림이 ‘조종’이 아니라 ‘예지’라 생각하고 매리언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 있음을 재차 확인하며 자유의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매리언의 이 판단이 옳은 것인지 궁금해지고 제발 옳기를 바라게 된다.

 그렇게 끝나나 싶은 영화는 호락호락하게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잠시의 평안이 있은 후 매리언의 무언가에 의구심을 갖는 순간 마음속으로 외치는 나를 발견한다. '아니야, 매리언. 그만. 무언가를 의심하지 마. 그냥 이 평온한 일상에 만족하라구.’ 그러나 그것은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을 손에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빨간 알약을 입에 털어 넣던 네오(영화 <매트릭스>)에게 그 약을 먹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

매리언은 결국 스코틀랜드에 간다. 꿈과 그림과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예지 혹은 조종. 이 모든 것이 일찌감치 우리에게 주어진 힌트들이다. 어디까지 짜 맞출 자신이 있으신지.

            글.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FM<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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