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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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누구인가
 tvN 월화드라마 ‘루카:더 비기닝’이 던지는 만만찮은 질문들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1.03.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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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루카'
tvN 월화드라마 '루카'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휴먼테크라는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인체실험으로 여러 동물의 능력 유전자를 가진 존재, 지오(김래원)가 탄생한다. 이른바 ‘루카 프로젝트’로 불리는 실험. ‘루카(L.U.C.A)’란 모든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는 ‘최후의 보편적인 공통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을 뜻한다. 

실로 거창한 이름을 가진 프로젝트지만 이를 통해 지오 같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려는 이들의 목적은 돈과 권력이다. 프로젝트의 수뇌부인 국정원의 숨은 실세 김철수(박혁권)와 사이비 교주 황정아(진경)는 이 실험이 막대한 돈을 벌어줄 거라 여기고, 지오 같은 새로운 종을 신적인 존재로 부각시켜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tvN 월화드라마 <루카:더 비기닝>의 세계관은 국내 드라마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슈퍼히어로물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헐크’처럼, 방사선 실험의 부작용으로 분노하면 변신하는 ‘저주 같은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

하지만 <루카>는 태생적으로 그런 슈퍼히어로들과는 다르다. 그가 능력을 갖게 된 건 자신의 의지나 실수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욕망이 만들어낸 의도된 실험 결과다. 실험을 당한 많은 아이들이 모두 실패하고 사망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지오는 전기뱀장어 같은 전류를 방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인체가 버텨낼 수 있는 한계치를 계속 높이기 위해 지오는 끝없는 전기고문을 당한다. 이처럼 지오는 ‘만들어진 인간’이고 그로 인해 비극을 겪게 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마치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

애초 그는 어쩌다 갖게 된 능력으로 슈퍼히어로가 되어 인간을 구원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부르며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인간들로부터 도망치는 존재. 전류를 방출하거나 인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괴력은 적어도 그에게는 능력이 아니라 저주다. 그는 실험되고 유전체를 배양한 후 쓸모없어지면 소각 처리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실험동물’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tvN 월화드라마 '루카'
tvN 월화드라마 '루카'

<루카>를 보다보면 최근 동물실험을 두고 벌어지는 생명윤리 논쟁이 떠오른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과거 생존을 위해 수렵을 하던 시절을 지나 동물원을 짓는 단계로 넘어와 이제는 인간의 수명(건강)을 위해 실험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하지만 동물을 대상화하는 걸 당연시하는 착취적인 관점은, 그 폭력성이 폭로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마치 동물처럼 취급되며 절멸의 위기까지 놓이게 됐던 무수한 원주민들의 비극을 비판하는 문화인류학자들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타자(동식물 같은 자연을 모두 포함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게다가 인류가 지구라는 작은 행성의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들의 비극이 인류에게도 엄청난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인식까지 생겨났다. 이제는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이라 부르는 그 지칭의 변화에서도 느껴질 수 있듯이, 우리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공존의 관점’을 요구하게 됐다. 

<루카>의 질문은 그래서 달라진 시대에 과연 누가 괴물이고 누가 인간인가를 질문한다. 분노하면 통제력을 잃고 기억까지 잃은 채 괴력을 뿜어내는 지오가 괴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욕망 때문에 그를 만들어내고 실험하는 인간들이야말로 진짜 괴물이다.

게다가 이런 특별한 능력 혹은 저주를 가진 존재는 자신의 생존본능이 만들어낸 폐허 위에서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고 외로워한다.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인간성의 증명’이다. 끔찍한 실험을 저지르면서도 악마 같은 웃음을 짓는 저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니. 

인간은 어쩌면 점점 지오처럼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과장된 캐릭터로 표현되어 있지만, 인간의 수명은 과학의 힘을 빌려 갈수록 늘고 있고, 향후 인간의 능력은 유전자 치료는 물론이고 로봇 공학 같은 기술의 도움으로 더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이 괴물이 아닌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걸 증명하는 건 외적인 것이 아닌 행복, 슬픔, 아픔, 연민 등등의 인간적인 면들이 아닐까. <루카>의 지오가 보여주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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