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방송 폐업 1년..."'주파수 99.9㎒'에 다시 도민 목소리 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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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방송 폐업 1년..."'주파수 99.9㎒'에 다시 도민 목소리 담고 싶어"
장주영 경기방송 노조위원장, 조합원들과 매주 방통위 앞 피켓 시위
"23명에서 현재 14명 남아...방통위 공모 서둘러야"
  • 이재형 기자
  • 승인 2021.03.2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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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
지난 24일 방통위 앞에서 출근길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경기방송 노조 조합원들 ⓒPD저널

[PD저널=이재형 기자] “돌아와요 99.9” “방통위, 사업자 공모 서둘러라." 

지난 24일 정부과천청사 앞. 각 부처 공무원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 사이로 지난해 폐업한 경기방송 노조 조합원 10여명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경기방송지부(이하 경기방송지부) 조합원들은 지난해 3월 30일 경영진이 자진 폐업한 이후 매주 수요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앞에서 정기적으로 출근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방송의 후속사업자를 조속히 선정해달라는 목소리를 방통위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날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만난 장주영 경기방송지부장은 "폐업 당시 23명의 동료가 남아 새로운 방송사 설립까지 투쟁하겠다고 뜻을 모았지만 현재 남은 인원은 14명뿐"이라며  "경기방송이 사용했던 주파수 99.9㎒이 공적책임을 준수하는 사업자에게 돌아가고, 경기도민의 청취권이 보장되는 걸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투쟁을 이어왔다"고 지난 1년을 돌아봤다. 

방통위는 2020년 12월 승인을 받지 않고 경영권을 행사한 임원의 경영 배제 등을 조건으로 경기방송에 조건부 재허가를 내렸다. 경영진의 전횡을 지적하면서 경영 투명성을 강화하라는 지시였지만, 경기방송 사업자는 초유의 자진 폐업을 결정했다. 경기방송 사업자는 방송 면허를 반납하고 임대업을 영위하고 있는 반면 직장을 잃은 경기방송 구성원들은 길거리에서 기약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장주영 지부장은 "시민들에게 공개됐던 경기방송 신관의 오픈 스튜디오에는 24시 무인 커피전문점이 들어섰다. 방송사업자일 때 싼 값에 부지를 사들여놓고 방통위 제재를 받자 주파수와 방송사업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임대사업자로 변신한 것"이라며 "경기방송이 영리에 따라 방송사 재산을 유용하는 나쁜 선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경기도와 OBS 등의 방송사들이 경기방송 후속사업자 공모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아직 구체적인 공모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방통위는 상반기 내에는 공고를 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경기방송 후속사업자의 사업 유형과 자본금 규모, 방송발전기금 징수 기준 등을 검토 중이다.

한상혁 위원장은 지난 24일 전체회의 말미에 "오늘 출근길에 경기방송 퇴직자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면서 "여러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지만 지상파 방송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고민을 좀더 해줬으면 한다"고 사무처에 당부하기도 했다.   

장 지부장은 독립법인 이전의 TBS와 유사한 모델을 담고 있는 ‘경기도 공영방송 설치 및 운영조례안’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특정 사업자를 선호한다거나 배제하는 것으로 비쳐질까봐 부담스럽다"면서 "방송법을 지키고 공공재산인 주파수로 사회에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업자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장 지부장은 경기방송 후속사업자에게 바라는 요구사항에 대해선 "공영과 민영을 막론하고 ‘공공성, 지역성, 인간존중’을 실현하는 사업자여야 한다"고 언급한 뒤,  폐업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소유와 경영 분리를 보장하는 장치도 절실하다"고 했다.  

방통위가 올해 공모 절차에 들어간다하고 하더라도 경기방송 후속사업자가 문을 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iTV가 정파된 뒤 수도권을 권역으로 한 OBS가 방송을 시작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장 지부장은 '99.9㎒가 부활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느냐'는 질문에 '"거리에서 집회를 열고 투쟁하는 입장이 되어 봤으니,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면 사회 곳곳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사각지대를 조명하고 싶다"고 했다.  

 

장주영 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 노조위원장 ⓒPD저널
장주영 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 노조위원장(전 경기방송 PD) ⓒPD저널

-경기방송이 정파된 지 곧 있으면 1년이다. 거리에 나선 경기방송지부 조합원들은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나 

“폐업 당시 23명의 동료가 남아 새로운 방송사 설립까지 투쟁하겠다고 뜻을 모았지만 현재 남은 인원은 14명뿐이다. 누구는 생계문제로, 누구는 지치고 희망이 안보인다고 다른 분야로 떠났다. 남아있는 조합원들은 생계문제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올바른 방송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소신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사태 장기화로 퇴직금과 실업급여도 거의 떨어지면서 조합원 대부분은 심각한 생활고에 처해 있다.”

-경기방송 사업자는 임대사업자로 변신했다. 경기방송 폐업 당시 우려했던 ‘먹튀’ 상황은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현재 경기방송 사업자는 방송사업 자산으로 부동산 임대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공개했던 경기방송 신관의 오픈 스튜디오도 24시 무인 커피전문점으로 바뀌었다. 방송사업자일 때 싼 값에 부지를 사들여놓고 방통위 제재를 받자 1년 적자를 핑계 대며 주파수와 방송사업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임대사업자로 변신한 것이다. 전무이사 1인이 지분을 소유하면서 70% 의결권을 위임받아 제작, 편성, 보도까지 총괄하고 있으니 시정하라는 당연한 요구를 한 건데 폐업해버렸다. 그때 방송법에 따라 재허가를 내주지 말았어야 했다. 경기방송이 영리에 따라 방송사 재산을 유용하는 나쁜 선례가 된 것 같다."  

-경기방송 사업자가 토지 용도 변경이 부당하다며 수원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1심에서 승소했다.

"수원시는 불복해 항소한 걸로 알고 있다. 애초 경기방송 영통부지는 방송시설 용도였고 경기방송이 '방송사업자'라서 주변 시세보다 3분의 1 가격에 싸게 들어올 수 있었던 거다. 수원시는 지역방송사 운영을 돕기 위해 땅의 용도를 근린생활시설로 바꿔준 것이었고, 이제 방송을 폐업해 그럴 필요가 없으니 방송시설용지로 돌리려 했다. 1심 재판부는 방송사 주변에 공공시설이 들어와 상가임대수요가 늘거고, 이 상황에 방송용지로 변경하면 주변 수요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1심 판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다른 방송사들도 혜택을 받아놓고 유지가 안되면 방송을 접고 임대사업자로 변신해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명분을 준 것 아닌가."

-방통위는 2021년 업무계획에 ‘경기방송 후속사업자’ 공모가 포함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최소한 늦어지는 원인, 공모 시기라도 안다면 불안감은 없겠지만 아직까지 방통위는 ‘좋은 사업자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조속히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라는 애매한 답변뿐이다. 작년에는 4월 공모를 한다고 했다가 6월, 9월, 연내로 미뤘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경기방송 노동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그들의 고용 안정과 더불어 좋은 사업자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있다. 조속히 사업자 공모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지 5개월이 지났지만 변한 건 없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경기도형 공영방송 설립'은 그마나 진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발의된 조례안에 대한 의견은. 

"경기도의회 조례안이 공개된 뒤 의견을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노조가 특정 사업자를 선호한다거나 배제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런 질문이) 부담스럽다. 우리는 방송법을 지키고 공공재산인 주파수로 사회에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업자를 바랄 뿐이다." 

-언론노조는 경기도의회에 조례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하던데. 

조례안에서 경기도지사에게 △방송편성책임자 임명 △방송편성규약 제정 및 공표 △시청자위원회 구성 등 실권을 주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정치적 쟁점이 됐다. 조례안에 경기도 공영방송을 '재단법인'으로 전환하는 의무 조항을 넣어 방송의 독립성, 제작 자율성, 종사자의 고용안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언론노조의 의견이다."

-새로운 99.9 경기방송은 ‘경기방송’의 무엇을 계승하고, 또 무엇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나?

"공영과 민영을 막론하고 ‘공공성, 지역성, 인간존중’의 세 가지 가치를 실현하는 ‘올바른 사업자’가 나타나야 한다. 소유와 경영 분리를 보장하는 장치도 절실하다. 경기지역 인구는 1300만에 달하지만 뉴스 소비를 주로 중앙방송 3사에서 내려다주는 걸 보고 있다. 서울에서 결정된 정책이 결과적으로 지역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해석하고, 지역의 공공의제를 중앙에 전달하는 언론이 필요하다. 교통 방송 청취 수요도 많은데, 유일하게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TBS에선 경기도 국도 소식을 다루지 않는다. 경기도민 입장에선 출퇴근길 TBS를 들어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iTV와 OBS 사례를 보면 정파 후 이를 계승하는 방송사가 나타나기까지 앞으로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애청자들과 경기방송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999채널'에 경기지역 뉴스와 음악 코너를 오디오 클립으로 제작해 올리고, 또 SNS 밴드를 만들어 청취자 600명과 방송사 부활이나 일상의 소식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근근이 운영 중이다보니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방통위가 공모를 서둘러야 한다고 거듭 말씀드리고 싶다. "  

-주파수 99.9가 부활하면 무얼 먼저 하고 싶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싶으면서도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투쟁을 하면서 방송으로 얻는 보람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고 있다. 폐업 전에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취재원을 만날 때, 진심으로 처지에 공감하고 감정을 대입했었나 되돌아본다. 우리가 거리에서 집회를 열고 투쟁하는 입장이 되어 봤으니,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면 사회 곳곳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소홀히 다뤘던 사각지대를 조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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