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빛과 철', 조각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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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과 철', 조각난 진실
내 남편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면
  • 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 승인 2021.03.29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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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과 철' 스틸컷.
영화 '빛과 철'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1년이 지나 일하던 공장으로 돌아온 희주. 조용히 눈에 뜨이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 막이라도 친 듯 희주는 그렇게 움직인다. 

그에게 지난 1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과 슬픔과 어이없음과 절망이 한꺼번에 몰아친 시간이었으리라. 예상하지 못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남편. 남편의 과실로 일어난 그 사고로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량의 운전자는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 오빠 내외는 희주를 감싸듯 받아주지만 그조차도 희주에게는 부담이고 짐이다. 

공장의 주방에서 일하는 영남.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성실하게 다른 사람의 모습에도 마음을 나눠주며 영남은 그렇게 살고 있다. 그에게 지난 1년은 한숨과 희망과 원망과 용서가 뒤섞인 시간이었으리라. 예측하지 못한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가 된 남편. 더구나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 중앙선을 넘어 온 상대 차로의 운전자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 기약 없이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보살피며 영남은 그저 더 나은 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한 공장에 있으니 어차피 만날 운명이 아니었을까. 어느 날 우연히 식당에서 희주와 영남이 마주치고, 희주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지만 영남은 따뜻함을 건넨다. 그리고 희주의 일상에 영남의 딸 은영이 끼어든다. 

뉴스를 읽다보면 참 많은 사건사고가 매일 일어난다. 아침종합뉴스를 진행하던 시기에는 매일 새벽 뉴스부터 사건사고 기사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려주는 것뿐인데도 정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좋지 않았다. 가끔 생각해보고는 한다. 이 사건 팩트 이면에 있는 진실은 어떤 것일까 하고 말이다. 이 영화 <빛과 철>은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사망한 남편이 가해자이기에 떳떳하지 못한 마음으로 죄의식을 마음 한 가득 담고 살아오던 희주에게 던진 은영의 한 마디가 파문을 일으킨다. 그 작은 돌은 점점 파장을 일으키며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에게 뾰족한 끝을 돌려 들이대게 한다. 

그리고 희주의 생각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그가 어쩌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기도한 것일 수도 있고 가해자로 낙인찍힌 남편은 오히려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번져 간다. 

은영의 한 마디에서 촉발된 희주의 행동과 심리는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만약 희주의 생각이 진실이라면 혹은 진실에 가깝다면 영남의 태도는 어떻게 변할까. 희주가 1년 넘도록 끌어안고 있던 아니 빠져서 허우적대던 그 시간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 과연 진실의 속살이 드러날 것인가.

영화 <빛과 철>은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큰 힌트를 남기면서 어떤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맞춰가는 단서가 얼마나 위험하고 근거 없는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어떤 대전제를 진짜라고 상정하고 나면 그렇지 않은 것도 끼워 맞춰지는 조각이 된다. 그 작은 조각들은 서로 상관이 없기도 하고 대전제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대전제로의 확신이 가득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큰 퍼즐을 완성하는 조각들이 되는 것이다. 

희주의 마음속에서 맞춰져 가던 퍼즐조각은 급기야 희주의, 영남의 지난 시간을 헤집기 시작하고 남편들과 주변 사람들의 이면을 드러낸다. 층층이 쌓여있던 시간의 파편은 그렇게 희주와 영남의 일상에 새로운 상처를 내지만 희주가 밝혀내리라 했던 진실은 또 다른 변수를 만나면서 순식간에 다른 방향으로 튄다.
 
영화 <빛과 철>은 사고 뒤에 남겨진 두 사람 희주와 영남을 주축으로 사실과 진실 사이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다보니 일정부분 추리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영화는 속도를 조절하고 분위기를 조율하면서 한 사고로 인해 갈려져 나온 두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지도록 노력한다. 

희주의 추측에 쉽게 말려들지 않게 하면서도 추측에 동조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영남의 굳센 마음을 바탕으로 희주에게 쉬이 동화되지 않도록 한다. 이 묘한 시소를 타고 당신은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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