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콘 돌리다 깨달은 것들
상태바
리모콘 돌리다 깨달은 것들
[라디오 큐시트]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1.03.30 19:1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서비스는 매체 중심의 시장을 소비자인 시청자 중심으로 옮겨놓고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PD저널=박재철 CBS PD] 늦은 밤, 귀가하면 가장 먼저 리모콘을 찾아든다. 현관 문턱을 넘어서면 척추동물이었던 몸은 서서히 연체동물로 변한다. 오징어 다리마냥 온몸이 축 늘어지고 거부 없이 날 받아주는 유일한 곳, ‘소파’에 무턱대고 몸을 푼다. 

올림차순으로 100번 대까지 갔다가 다시 내림차순으로 한자리 번호까지, 엄지손가락은 채널의 사다리를 광폭으로 분주히 오르내린다. 남들은 캠핑장에서 ‘불멍’을 한다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티멍’을 한다.

“채널은 많은데 볼만한 게 없네!”라는 푸념을 십 년째 하다가 그 사실조차 잊어버리곤 리모콘을 누른다. 안착지점을 이리저리 찾지만 채널의 방황이 끝나는 곳은 언제나 한결같다.

일찌감치 번잡한 세속을 벗어나 대자연에서 해방감을 맛보고 있는 이를 넋 놓고 부러워하거나, 직장에서 시달린 어른들의 짙은 그림자를 순식간에 걷어가는 아이들의 천진무구함에 무장해제되어 흐뭇해한다. 그런가 하면, 침샘을 자극하는 소리와 현란한 비주얼에 기꺼이 현혹돼 야식의 욕망에 굴복하며 요리 프로그램에 눈과 귀를 활짝 연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삶에 있어 크고 작은 ‘사건’이 되지 못한 채 이렇게 모래시계의 병목을 속절없이 빠져나가고, 난 그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며칠 전 불현듯 현타가 왔다. 해변가 모래 위 발자국처럼 날로 희미해져 가는 리모콘 버튼을 습관적으로 누르다가 문득 두개골을 타종하듯 둔중하게 울리는 깨달음.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있는 나는 정작 도시인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아이들을 보고 있는 나는 육아 경험이 전무하다. <맛남의 광장>에서 선보이는 음식을 보고 있는 나는 요리는 하지 않고 언제나 주문을 한다. 

현실의 결핍은 행동을 촉구하기보다는 대리만족으로 갈음된다. TV는 어느새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토닥토닥해줄 때마다 위안을 얻지만 그도 잠시 종국엔 생기를 잃고 풀썩 주저앉는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무언가를 하지 않는 나의 무위(無爲)에 언제부턴가 내가 시청한 프로그램들은 그럴듯한 알리바이가 돼주고 있었다.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코올 없는 술, 니코틴 없는 담배랄까, 중요한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으로 실제 현실이 아닌 유사현실 속에서 한동안 그럭저럭 잘 살고 있었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그 착각은 ‘그러면 안 되겠다’는 조바심을 이내 손잡고 끌고 왔다. 

꼰대의 나이가 되면서 ‘공감 능력’이 머리카락처럼 빠져나가던 차에 이건 예상 밖의 공격이다. 이른바 ‘실감 능력’의 상실. 일상의 세목을 매개 없이 직접 느껴보는 감각을 잃고 있다는 경고음. 나를 둘러싼 일상을 직접 겪어내는 과정이 하나둘 생략될 때 손과 발로 전해지는 ‘실감 능력’이 이렇게 옅어지는 건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TV 속에서 봐서 다 안다”라는 근자감은 언제부턴가 일상을 기시감으로 바라보게 했고 그것을 금세 시큰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듯했다. 또한 나의 게으름을 용인해주는 프리패스가 돼주기도 했다.

실제로 걸어가 보고, 손수 만들어보고, 직접 교류하면서 내 오감(五感)의 채도와 명도를 높이는 일에 어느 순간 나태해졌다. 돌이켜보면, 그런 구체적인 평범함을 건너뛰거나 소홀히 할 때마다 삶은 조금씩 위태로워졌다. 짬을 내 자연을 더 자주 찾고, 유명한 레시피로 요리도 해보고, 잠시나마 친척이나 지인의 아이도 돌보는 경험을 쌓지 못했다. 

때론 실수나 어설픔, 혹은 후회나 자책이 오히려 일상 속에서 잃어가는 ‘실감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아닐까. 내 몸을 직접 통과한 일상이 기억의 그물에 오래 머무는 법이라 했다. 무엇보다 이제 봄이다. 언젠가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제는 해야 할 이유가 되는 셈이다.

“일상은, 흠집을 삼키고 또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반죽처럼, 다시 시작된다.”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중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송찬영 2021-04-02 18:23:2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