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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회귀는 TV의 한계인가 미덕인가

|contsmark0|"추억"이라는 제목은 짐짓 회귀적이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의 흐름에서는 추억이 퇴행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성숙의 계기로 이어진다. ‘다시 합치고 보자’는 식의 퇴행적 회귀를 한다면 그것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수준에서의 타협적 발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들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드라마가 다만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일 따름이니까. 하지만 일상의 단편들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추억을 되뇌이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내적 성숙(타인에 대한 배려와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 쯤이 될텐데)의 결과가 회귀라고 할 때, 그 주장은 더 본질적이고 강경한 것이 된다. “이혼이라니. 참으로 철부지로다.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서 어찌 삶의 본모습에 이르렀다 할 수 있으랴!”라는 외침과 다르지 않으니까.결혼과 관련한 국면에 국한시키더라도, 삶의 본모습이 이처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서야’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가정을 꾸미지 못한 오세경(박은영)이나 재결합하지 못한 민형준(손창민)은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삶을 맞이하는 자세가 진지하지 못한 인물들인가? 서인영(최진실)과 한정호(김승우)처럼 추억의 주파수를 잘 맞춰 재결합에 이르는 행복한 커플들은 현실에서 희귀하다. 오히려 추억의 아귀가 늘 빗나가는 커플들 혹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덮어둔채 새 삶에 부딪쳐야 하는 불행한 커플들이 더 많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드라마 좥추억좦은 가정법을 통한 현실 묘사에 가깝고, 그 한계 안에서 큰 공감을 일으킨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인영과 정호같은 이혼 커플이 비록 현실에 흔치 않다 하더라도, 이혼 이후 그들의 성숙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다만 아직 이혼할 의향이 없는 부부들에게 그럴 것이라는 말이다.하지만 그런 30대의 가정된 이혼상황이 같은 연배 기혼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는 점은 시대의 변화와 관련하여 주목해 보아야 한다. 한번 결혼했으면 백년해로하는 것만이 최상의 가치라고 하는 도덕률 안에 부부의(더 정확히는 여성의) 행·불행 여부는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이제 여성들은 불행한, 행복 없는 결혼 생활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또, 여성의 일방적인 봉사가 결혼 생활의 미덕이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않는다. 남성들 또한 백년해로 이데올로기 만으로 아내를 집안에 주저앉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이미 여성들의 자립심이 너무 길러졌고, 그만큼 남성들의 성품은 너무 섬세해졌다. 강한 여성, 유약한 남성 차원에서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합리적 인간관계 쪽으로 세상이 나가고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남편의 외도를 계기로 단호하게 결혼생활을 끝내는 서인영의 결단력, 그에 비해 각종 논리를 동원해 설득해보지만 무력하기만 한 한정호의 행동 양식 사이의 대비가 그런 측면을 잘 나타내준다.이렇게 이 드라마는 이혼을 모티브로 하여 기혼자들의 외도 장면도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전치 못한 드라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좥애인좦 때와 마찬가지로 음란한 자들의 히스테리 반응일 뿐이다. 문제는 남녀관계를 양극단으로 몰아버리는 편협한 사회에 있지, 그 사귐 자체에 있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남녀의 사귐은, 공식적으로, 무덤덤한 사무적인 관계, 데이트, 여관 이렇게 셋뿐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그나마 데이트 단계마저 사라지고 양 극단만이 남는다. 그러니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은 무성한 뒷소문에 휩싸이게 되고, 그것이 세경과 민 부장과 인영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더 피곤하게 만드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 재무장이라는 수사로 위장한 상호 억압의 공고화가 아니라, 더 다양한 성인들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자세이다.그런 의미에서 이창순 pd의 애인과 추억은 인간관계의 새로운 기획인 동시에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장애를 겪고 어떻게 왜곡될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을 연작으로 보면 이해가 더 잘 되는 부분들이 있다. 가령 추억에서 아주 미흡하게 생략되어 있는 가정내 여성의 억압과 차별에 대해서는 다만 서인영의 대사로만 스쳐지나가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애인에서의 황신혜를 참조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애인에서 유동근 이응경 부부가 이혼을 했다면 아마도 추억에서와 같은 정황들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결혼 이후의 새로운 남녀관계를 다룬 애인과 이혼 이후의 삶을 보여준 추억을 보고 나니, 이창순 연출의 ‘30대의 삶과 진실’ 3부작을 예견하게 된다. 다음 작품의 모티브가 재결합이 아닌 다른 삶의 행로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말이다.추억을 보면서 여전히 갑갑한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애인에서의 가정 회귀가 추억에서도 되풀이된 탓에 차라리 혼자 사느니만 못한 재결합이나 새로운 남녀관계의 설정으로의 나아감 등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 다만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미숙함에서 저질러진 이혼이라 해도 삶의 새로운 기획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등등에 대해서도 30대는 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몇몇 기사에서 애인과 추억을 ‘가정주의’라 표현했던데, 하여간 그 가정주의는 대중 텔레비전의 한계일까, 아니면 미덕일까? 생각중이다.
|contsmark1|pd연합회 방송비평모임정리 : 손병우(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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