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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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노매드랜드' 펀이 슬픔을 치유하는 방법
  • 박재철 CBS PD
  • 승인 2021.05.28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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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부스 ⓒ픽사베이
라디오 부스 ⓒ픽사베이

[PD저널=박재철 CBS PD] 라디오 방송 중 진행자가 묻는다. “이런 사연들에는 참, 덧붙일 말을 찾기가 어렵네요. 좋은 생각 있으세요?”

노래가 나가는 사이, 실시간으로 들어온 청취자 사연을 읽다 보면 입에서 절로 “진짜, 그러네요 (뜸들이다)... 그냥 소개하지 말죠.” 이러곤 만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상처에 상투적인 위로와 공감은 역효과라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내는 사연에도 연령별 변곡 구간이 있다. 대략 40대를 전후로 완만하게 갈리는데, 젊은 세대에는 어떤 ‘성취와 향유’로 갈음되는 사연들이 많다. 본인이나 가족의 합격, 결혼 소식, 좋았던 곳에서의 뭉클한 한때, 뜻깊은 만남이나 각인하고픈 사랑의 내용이 주다.

반면, 누구를 혹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아픔과 슬픔, 주위 사람에 대한 낙담이나 악화된 상황 속에서의 어쩔 수 없음, 그리고 과거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그리움 또는 향수 등이 40대 후반의 청취자에게서 자주 확인된다. 이른바 ‘상실과 기억’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유형의 사연들이다. 

시간의 맷돌에 맞물리며 돌아가는 우리네 삶이어서 그럴까? 거기서 빚어지는 희노애락도 맷돌이 돌면 돌수록 점차 그 입자가 비슷해지는가 보다. 
 
삶의 사이클이 ‘성취와 향유’에서 어느새 ‘상실과 기억’쪽으로 접어들면 처진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줄 누군가의 팔걸이가 더욱 절실해진다. 나도 모르게 자기 연민적인 상념에 잠시 빠져 있다가 영화 한 편에서 적잖은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노매드랜드>는 차 한 대에 의지해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실제 유랑 생활자들이 출연해서일까 다큐멘터리적 분위기가 은은히 밴 로드 무비의 묘미를 풍긴다. 올해 베니스와 오스카가 인정한 작품이니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품평은 접어두자. 짙은 잔향을 남긴 대목은 주인공이 나름의 공허와 슬픔을 치유하는 순간들이었다. 그 방법은 두 가지이다. 

우선은 ‘자기 절망의 왜소화’다. 손바닥만한 냅킨에 찍힌 점은 눈에 띄게 커 보이지만 거대한 칠판 위에 찍힌 점은 찾기 힘들 정도로 작아 보인다. 같은 크기의 점을 전혀 다른 존재감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점 자체가 아닌 점이 놓인 배경이다. 

영화에서 커다란 칠판의 역할을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압도적인 스케일의 자연이다. 미서부 협곡의 웅장함과 광활한 황무지의 고독감, 거칠게 휘몰아치는 해변의 성난 파도와 신화를 품고 있는 듯한 투명한 밤하늘의 별자리들, 그 풍광 속에서 나를 억누르던 고통과 채울 길 없던 상실감은 견고한 고체성을 포기하고 서서히 용해된다. 영화 속 자연은 단순한 눈요기의 삽화가 아니라 극 중 하나의 캐릭터를 부여받은 배우 같은 느낌을 준다. 

두 번째는 ‘자기 슬픔의 상대화’다. 어느 누구에게나 가슴 속 깊게 파인 웅덩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좀처럼 괴로움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면의 웅덩이를 너무 오래, 너무 자주 바라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시간들은 내 웅덩이만을 더욱 깊고 크게 느끼도록 한다.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고 일터와 남편을 잃고 실의에 빠진 주인공 ‘펀’은 자신의 고통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러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점차 변해간다. 그들의 이야기와 처지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두면서,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칠흑 같던 현실이 삶을 포기할 정도로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눈뜬다. 그리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무게가 꼭 깊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무게감에 짓눌리는 쪽보다는 삶의 가치를 조금씩 만들어나가는 쪽을 펀은 선택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아름다운 장면 하나를 간직할 수 있어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한 유랑자의 담담한 고백에서 삶의 비밀을 살짝 엿본다. 

구원은 자신이 힘겹게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때에 찾아오지만, 때론 밖에서 느닷없이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었을 때 찾아오기도 한다. 영화는 의지적 극복과 우연적 만남, 그 두 가지 힐링의 순간들을 적절히 교차해 보여준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말한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우리는 춤을 출 수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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