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청춘', '80년 광주' 위에 쌓은 레트로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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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종영하는 KBS '오월의 청춘', 80년 광주 배경으로 그린 멜로 드라마

오는 8일 종영하는 KBS '오월의 청춘' 포스터.
8일 종영하는 KBS '오월의 청춘' 포스터.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설레던 오월의 한 때가 갑자기 잿빛으로 변하는 순간을 당시 광주 시민들은 봤을 게다. 평범했던 공기가 순간 험악해지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광경을 당시 광주 시민들은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며 바라봤을까.

KBS 월화드라마 <오월의 청춘>은 그 순간을 대학가에 난입한 군부대가 곤봉으로 사정없이 지나는 대학생을 내려치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어찌 보면 뜬금없는 전개처럼 보이는 장면이지만, 생각해보면 당시 광주 시민들이 느낀 장면의 낯설음이 그랬을 듯싶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멍해질 수밖에 없는 일상으로 훅 들어온 폭력. 

합숙훈련을 하던 중 난리가 난 거리로 코치 몰래 빠져나온 명희(고민시)의 동생 명수(조이현)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며 북한군이 쳐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우리 군인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눌 리는 없는 일 아니냐며. 하지만 그 때 그와 함께 있었던 정태(최승훈)는 그렇게 시민들을 무차별로 때리고 총까지 들이대는 곳에 아버지 황기남(오만석)이 서 있는 걸 분명히 본다. 국민의 세금을 받아먹는 그들은 북한군이 아니었다. 그저 권력에 눈 먼 신군부에 의해 무차별 진압을 가한 우리 군인들이었다. 

<오월의 청춘>은 청춘 멜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사뭇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장르와 소재를 이어붙인 드라마다. 7회까지 보면 너무나 전형적이라 여겨질 만한 청춘 멜로(그것도 3각 멜로)로 흘러가던 드라마는, 8회에 신군부가 움직이며 광주의 비극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장르의 색깔이 완전히 바뀐다.

처음에는 곤봉으로 시작하더니 다음에는 총검으로, 실탄으로 피 흘리는 광주의 비극이, 어쩌다 찾아가게 된 병원 응급실에서 밀려들어오는 부상자들의 면면을 통해 그려진다. 황희태(이도현)와 김명희가 병실에서 함께 보내는 달달한 멜로의 분위기는, 응급실에 넘쳐나는 부상자들과 그들이 쏟아내는 피와 신음소리로 점점 덮인다. 그들이 입은 하얀 의사가운과 초록색 간호사복은 점점 핏빛으로 변해간다. 청춘 멜로가 그려왔던 푸르른 설렘의 정경들은, 이제 핏빛으로 물든 광주 속에서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감정들로 폭발한다. 

이건 <오월의 광주>가 택한 5‧18을 그리는 방식이다. 청춘 멜로라는 장르는 이 참혹한 비극이 벌어지기 전의 광주의 공기를 담아내고, 이미 이들이 앞으로 겪을 비극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래서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사랑이 그려질수록 안타까워진다. 

다소 상투적인 방식이지만 <오월의 청춘>는 멜로의 구조 안에도 5‧18의 비극을 은유하는 인물들을 담아낸다. 황희태의 아버지 황기남과 김명희의 아버지 김현철(김원해)의 악연이 그것이다. 보안부대 대공수사과 과장인 황기남은 과거 김현철을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는 사실만으로 붙잡아 고문을 하고 보안법 위반의 딱지를 붙여 놓는다.

8일 종영하는 KBS '오월의 청춘' 예고화면 갈무리.
KBS '오월의 청춘' 예고화면 갈무리. 

보통 멜로가 그리는 갈등이 사랑하는 남녀 사이를 가로막는 어떤 장애물에 의한 것이라면, 이 드라마는 부모 대에 대공수사과에서 만들어진 악연을 그 장애물로 삼는다. 여기에 신군부에 손을 대기 위해 아들을 광주 유지의 딸과 정략결혼시키려는 황기남의 이야기까지 더해진다. 그래서 청춘 멜로는 그 갈등요소 안에 시대적 공기를 담아낸다. 8일 종영을 앞두고 곧 터질 5.18 광주의 비극은 이 갈등을 좀 더 표면 위로 끄집어낼 것으로 보인다. 

사실 청춘 멜로라는 장르가 가진 달달함과 5‧18 광주라는 소재가 갖는 무거움은 잘 어울린다 보기 어렵다. 청춘 멜로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핏빛 5‧18 광주의 아픔은 정서적으로 공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이질감 때문에 오히려 이 드라마는 그 평화롭던 광주가 당시 맞이하게 됐던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담아내는 면이 있다.

이미 많은 콘텐츠들이 5‧18 광주를 다뤄졌지만, <오월의 청춘>이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절절한 느낌을 주는 건 아픈 이야기를 청춘 멜로 위에서 그려내고 있어서다. 어떻게든 지켜주고픈 이들의 사랑 앞에 잔혹한 군홧발이 드리워지는 충격은 그 무엇보다 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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