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50주년 '아침이슬'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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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민중가요로 널리 알려졌지만 한 편의 시 같은 '아침이슬' 노랫말

24일 공개된 김민기 트리뷰트 앨범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게 헌정하다' 4차 음원에는 35명이 참여한 '아침이슬' 음원이 담겼다.
24일 공개된 김민기 트리뷰트 앨범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게 헌정하다' 4차 음원에는 35명이 참여한 '아침이슬' 음원이 담겼다.

[PD저널=박재철 CBS PD] 당신이 태어난 지 올해로 50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사라지는 수많은 단명들에 비춰보면 당신의 생명력은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반세기, 멈춤 없는 생애주기가 가능했던 건, 세대를 이어온 사랑과 관심이 그 젓줄이 돼주었기 때문이겠죠. 

1987년 6월 신촌 로터리에서, 2016년 11월 광화문 광장에서 백만 명이 이구동성으로 당신을 불렀을 때 당신의 존재감은 뚜렷했습니다. 당신을 낳은 이가 언젠가 이렇게 고백했다지요. “거리에서 백만 명이 다 각자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부르는 걸 봤어요. 그때 생각했지요. 아! 이건 이제 내 노래가 아니구나.” 

맞습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귀속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이제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습니다. 어디에서건 당신이 등장하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가 됐습니다. 흡사 먼 타지에서 애국가를 목청 높여 부를 때처럼  저 깊은 곳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무언가를 향한 강한 열망, 그 심지에 불을 붙이는 부싯돌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당신의 이름 옆에는 민중가요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장중하면서도 절제미 넘치는 선율과 단호한 결의가 담긴 노랫말은 당신에게 혁명적인 낭만성을 깃들게 했지요. 저항과 투쟁의 거리에 당신은 늘 있었고 그렇게 빛났습니다. 

그런데 5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당신을 투사가 아닌 시인으로 기리고 싶어지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이제 와 당신이 가진 깊은 문학성에 자꾸 눈길이 갑니다. 당신은 4연으로 구성된 한 편의 시를 닮았습니다. 간주를 전후로 그 시는 반복되죠. 서정성과 서사성이, 여성성과 남성성이 마치 좌우의 날개처럼 힘차게 날갯짓하며 누군가의 마음을 항해 더욱 멀리 당신을 보냅니다.

풀잎마다 진주 같은 이슬이 맺히기 전에 긴 밤을 지새워야 했겠지요.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긴 밤’을 마중물 삼아 노래를 시작합니다. 긴 밤을 지새운 아침이슬이어야 진주보다 더 고울 수 있으니까요. 마음의 설움은 아마도 그 긴 밤을 지워야 했던 이의 몫일 테구요.

하지만 동산에 올라서 온몸으로 아침을 맞을 때 가슴 속에 있던 미움과 설움의 응어리는 어느샌가 옅어집니다. 아마도 자연의 신비롭고 조화로운 풍경 앞에서 내면의 지평이 예전보다 넓어진 덕분이겠죠. 당신은 그걸 “작은 미소를 배운다”라고 표현했죠.

내 안에 갇혀있던 울분과 고뇌로 더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 미소는 용인과 용서, 공감과 이해의 징표일 겁니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아침이어서 가능했을 내면의 변화입니다. 붉은 태양이 찾아오기 전이니까요. 

태양은 엄혹한 조건, 마치 누군가의 희생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 찌는 더위를 가열 차게 내뿜어댑니다. 긴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은 화자는 이제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이라는 가혹한 환경에 처해 집니다. 

그러나 화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하죠. “가겠다!”. 뜨거운 태양이 만들어버린 불모지 같은 광야에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이 직접 가겠다고. 이때 중요한 것은 “서러움 모두 버리고”라는 대목입니다. 서러움은 나만 홀대받고 부당하게 취급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인데, 그래서 마음속에서 보상 심리를 추동하고 손해에 민감한 자아를 만듭니다. 되도록 남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하죠. 

고독한 긴 밤을 지새우며 내 안에 쌓인 서러움마저 이제는 끊어서 버리겠다는 실존적인 선택, 그리고 그동안 관찰자적으로 노래했던 자신에게서 벗어나 광야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실천적인 다짐이 마지막 부분에 명료히 드러납니다. ‘나 이제 가노라’를 반복하며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광야로 가겠다고 노래합니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김민기 트리뷰트, 아침이슬 50주년 기념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김민기 트리뷰트, 아침이슬 50주년 기념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머지않은 과거, 곤봉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당신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옆 사람과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뒤로 물러서지 않았던 건, 너나 구분 없이 광야로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당신이 대신 표현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고귀하게.

그런 당신이 있어서 메마른 시절도 약간의 습기를 머금을 수 있었을 테지요. 그렇게 당신은 이 거친 땅에 귀중한 것들을 낳는 산파 노릇을 해왔습니다. 다시금 당신의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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