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선수 향한 황당 비방에 여성 혐오 조장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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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근거 없는 '숏컷=페미니스트' 주장 '젠더갈등'으로 키워
"혐오·차별 표현 받아쓰기, 심각한 인권침해이자 저널리즘 윤리 위반"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안산이 24일 오후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녀혼성단체전 결승에 참가해 경기를 하고 있다. 2021.07.24. ⓒ뉴시스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안산이 24일 오후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녀혼성단체전 결승에 참가해 경기를 하고 있다. 2021.07.24. ⓒ뉴시스

[PD저널=손지인 기자] 도쿄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를 향한 일부 남초 커뮤니티의 여성 혐오 공격에 언론이 ‘젠더갈등 보도’로 힘을 싣고 있다. '숏커트를 한 여성은 페미니스트'라는 억지 주장을 논란‧논쟁거리로 키워 여성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 24일부터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2020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전에 이어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안산 선수의 짧은 헤어스타일과 광주여대 소속이라는 점 등을 들어 비방이 시작됐다. 페미니스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깔려있는 소수의 목소리는 금세 언론 보도로 확산됐다.  

<"여대에 숏컷…페미냐" 금메달 딴 안산 헤어스타일 갑론을박>(중앙일보, 7월 27일), <"여대에 숏컷은 페미"…금메달리스트도 저격하는 좌표 찍기>(한국경제, 7월 27일), <"숏컷하면 다 페미…극혐이야" '2관왕' 올림픽 선수까지 공격 받았다>(아시아투데이, 7월 28일) 등 언론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며 공론화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지난 22일부터 29일까지의 '안산 선수' 관련 보도의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페미’ ‘숏컷’ ‘광주여대’ 단어가 연관어로 올라올 정도였다.  

곧바로 '숏컷은 페미니스트'라는 왜곡된 편견에 대항한 움직임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한지영 신체심리학자의 제안으로 숏컷을 하는 것은 그저 자유일 뿐이라는 ‘여성_숏컷_캠페인’ 해시태그 운동이 퍼졌다. 지난 28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SNS에 짧은 머리를 한 과거 사진과 함께 “‘페미 같은’ 모습이라는 건 없습니다. 긴 머리, 짧은 머리, 염색한 머리, 안 한 머리. 각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여성이 페미니스트”라는 의견을 적었다.  

언론은 안산 선수가 메달을 반납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과 이를 바로잡은 목소리를 '젠더 갈등' '페미논쟁' 프레임으로 같은 비중을 실어 다뤘다.  

<"'페미' 안산 메달 반납해야" vs "선수 보호해야" 갑론을박>(파이낸셜뉴스, 7월 29일),  <“메달 반납해야” VS “선수 보호”… 女양궁 안산의 짧은 머리, ‘젠더 논란’ 확전>(세계일보, 7월 29일), <안산 ‘페미’ 논란에 젠더갈등 또…“메달 박탈해야” vs “선수 보호해야”>(데일리안, 7월 29일) 등 ‘의견 대립’으로 바라보는 기사가 쏟아졌다. 

<파이낸셜뉴스>는 “'도쿄올림픽 양궁 2관왕' 안산이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메달을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남성 네티즌들로부터 제기되자 여성 네티즌들이 대한양궁협회에 선수 보호를 촉구하면서 젠더갈등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전했지만, 댓글에는 “그런 생각하는 사람 얼마 없는데 온국민이 알게 떠들고 다니냐”, “메달 반납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서 이걸 vs 써가면서 기사로 썼냐”는 성토글이 이어졌다.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 22일부터 29일까지 '안산 선수' 보도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 22일부터 29일까지 '안산 선수' 보도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29일 성명을 내고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와 비아냥일 뿐”이라며 “공인이나 유명인의 발언이라도 혐오와 차별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그대로 인용하지 않는 것은 ’성평등 보도 가이드라인‘을 모르더라도 지켜야 할 기본적인 보도윤리다. 대량의 뉴스가 생산되는 올림픽 기간을 노려 조회수를 높이려는 인터넷 커뮤니티발 기사 작성과 유포는 심각한 인권침해이자 저널리즘 윤리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안산 선수에 대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의 혐오‧차별 발언을 옮겨 쓴 기사 삭제하라”고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요구한 성평등위원회는 “안산 선수뿐 아니라 올림픽 기간 중 발생할 모든 성적 차별과 혐오, 반인권적인 보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수진 언론노조 성평등위원장은 “숏컷은 페미니스트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비방이고, 페미가 지탄의 대상처럼 여겨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서울시장 선거 이후 정치권의 힘을 받은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가) 안산 선수를 향해 이렇게 공격해도 된다는 당위성을 얻은 것 마냥 행동하고 있다”고 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논란을 기사로 쓴다면 단순하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쓰는 게 맞다. 언론이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된 것은 사실이 아니냐'며 그대로 받아쓰면 말도 안 되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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