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쥴리 벽화’, 문제적 보도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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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쥴리 벽화’, 문제적 보도는 남았다
윤석열 부인 김건희씨 비방 벽화 5일 만에 철거
언론, 벽화 상태 실시간 중계하면서 정쟁 소재로 소비
중앙일보, 여성혐오 비판 벽화 두고 '인증샷 명소'로 소개
"언론, 사회 갈등 해소 노력 없이 갈등만 키워"
  • 손지인 기자
  • 승인 2021.08.04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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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시 종로구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그려졌던 '쥴리 벽화'가 하얀 페인트로 뒤덮였다. ⓒPD저널
지난 2일 서울시 종로구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그려졌던 '쥴리 벽화'를 둘러싼 논쟁이 연일 뜨거워지자 서점 측이 벽화를 하얀색 페인트로 뒤덮었다. ⓒPD저널

[PD저널=손지인 기자] ‘쥴리 벽화’는 사라졌지만, 젠더 갈등·정쟁을 부추긴 문제적 보도는 남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를 비방한 벽화가 서울 종로 골목길에 나타난 지난달 28일부터 건물주가 자진 철거한 2일까지 언론의 보도를 보면 정쟁 소재, 가벼운 가십거리로 ‘쥴리 벽화’를 소비하는 형태가 두드러졌다. 
 
서울 종로구 한 중고서점 외벽에 설치된 ‘쥴리 벽화’는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 ‘쥴리의 남자들’이라는 문구 등과 함께 여성의 얼굴을 그려 넣은 그림이었다. 윤 전 총장 부인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풍문을 담은 것으로 벽화를 설치한 건물주는 언론에 풍자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여성변호사회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여성에 대한 혐오와 조롱은 폭력과 인권침해일 뿐이다”,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개탄스러운 행위”라고 '쥴리 벽화'를 비판했다. 

지난 7월 28일 <조선일보>의 첫 보도 이후 3일까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송고된 ‘쥴리 벽화’ 기사는 총 1396건. 다수 보도는 따옴표로 정치인과 단체의 반응을 전하거나 실시간 벽화의 상태를 전달하는 내용이었다.  

<尹부인 비방 벽화에 최재형 “인격 살인···더러운 폭력 중단해야”>(서울경제, 7월 29일), <종로 골목에 그려진 '쥴리 벽화'​···발끈한 야당+극우단체>(아주경제, 7월 29일), <'쥴리 벽화'에…누리꾼 "시리즈로"vs"朴누드화 같아, 악마들">(머니투데이, 7월 29일) 기사가 대표적인 예다. 

<쥴리 벽화 건물주가 전직 靑비서관 장인? “사실 아니다”>(조선일보), <페인트로 ‘쥴리벽화’ 덮은 보수 유튜버 “여성단체 어디갔냐”>(한국경제) 등 뜬소문이나 유튜버들의 거친 입을 앞세워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보도도 여럿이었다.   

7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진 골목에 유튜버들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 ⓒ뉴시스
7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그려진 골목에 유튜버들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 ⓒ뉴시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에 유튜버들이 몰려든 것도 언론이 ‘밀착취재’ ‘르포’ ‘현장 영상’ 등의 이름으로 벽화 상태를 실시간으로 전한 탓이 컸다.

지난 2일 만난 해당 중고서점 직원 A씨는 “<조선일보> 보도가 나간 뒤 오후부터 보수 유튜버들이 차를 끌고와 벽화를 막고 방송을 했다”며 “유튜버들이 확성기를 문쪽에 대고 소란을 피워 손님들도 당황스러워하고 인근 상가에도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혐오성 내용을 채워진 ‘쥴리 벽화’를 인증샷 명소로 소개하기도 했다.  <중앙일보>가 지난 30일 송고한 <인증샷 명소된 ‘쥴리 벽화’…유튜버는 지운 문구 다시 썼다>에선 ‘여기가 요즘 핫하다고 해서 왔다’는 시민 인터뷰 등이 실렸다. 
 
갈등 유발, 가벼운 가십성 보도가 포털 뉴스를 장식하면서 벽화 내용이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지, 여성혐오적 정서에 기댄 것은 아닌지 등 본질을 짚는 보도는 뒤로 밀려났다.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벽화 내용의 진실성을 입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고, 진실이라 할지라도 김건희 씨의 공적 영역의 활동이 아닌 과거 사생활을 비방하는 측면이 강해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 판례 흐름으로 볼 때 명예훼손죄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손 변호사는 “유력 대선주자의 가족인 김씨가 공적인물에 해당한다고 보더라도 이러한 표현 행위는 비판과 토론을 통해 시민의 영역에서 자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언론은 관전하는 자세보다 ‘쥴리 벽화’가 가지는 사회적 함의와 문제점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이숙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론은 김건희 씨의 결혼 이전 사생활까지 검증 대상인지, 벽화를 둘러싼 주장들이 타당한지, 근거가 무엇인지 등을 질문하지 않은 채 논란을 중계방송하듯이 보도하는 행태를 보였다”면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갈등을 점화시키기만 하는 보도로, 언론이 이번에도 공적 역할보다 조회수를 우선에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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