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뒤떨어진 성과주의 보도...도쿄올림픽 과제 안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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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상관없이 과정 즐긴 선수들...최선 다한 모습에 응원 보낸 대중
MBC 개회식 중계 방송 논란 이어 '노메달 악몽'·"원하는 색깔 아니야" 메달 치중한 태도 여전
"올림픽 순위=국가 경쟁력 인식 벗어나...과정 중심 관점 필요"

8일 오후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폐회식에서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폐회사를 하고 있다. 2021.08.08. ⓒ뉴시스
8일 오후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폐회식에서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폐회사를 하고 있다. 2021.08.08. ⓒ뉴시스

[PD저널=손지인 기자] 2020 도쿄올림픽은 17일 동안 펼쳐진 경기 소식을 시시각각 전한 언론에 가볍지 않은 과제를 안겼다. 높아진 인권 의식과 과정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의 태도에 개회식 중계방송에서 대형사고를 친 MBC뿐만 아니라 그동안 성과주의와 국가간 경쟁 구도를 강조했던 언론 역시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을 응원한 시민들은 메달 색, 유무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박수를 쳐주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쳤다. 더 이상 메달을 못 땄다고 선수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이들을 향해 비난을 쏟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언론은 대회 초반 여전히 메달 중심적인 보도에 머물러 있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해 언론의 박한 평가를 받은 대표적인 종목은 태권도였다. 지난 24일 장준 선수가 태권도 남자 58kg급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25일 이대훈, 이아름 선수가 16강전에서 패배하면서 언론은 일제히 ‘노골드’를 강조하며 ‘수모’ ‘망신’ 등의 표현을 썼다. 

<‘태권도 종주국’ 체면이…한국 대표팀, ‘노골드’ 위기>(동아일보, 7월 25일), <도쿄2020/한국 태권도, 올림픽 역사상 첫 ‘노골드’ 수모>(뉴시스, 7월 27일)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일보>는 장준 선수의 동메달 획득 소식을 전한 <태권도 종주국, 금빛이 사그라든다>에서 “세계랭킹 1위 장준은 첫날 준결승에서 패하며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고 했다. 

레슬링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3일 류한수 선수가 16강에서 탈락하자 <한국레슬링 ‘노메달 악몽’ 현실로>(국민일보, 8월 4일)를 비롯해 '빈손' '노메달 충격'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신문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25일까지 양궁 혼선 및 여자 단체전 금메달,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 태권도 남자 58kg급 동메달, 유도 남자 66kg급 동메달 획득 소식이 있었지만, 언론은 금메달 소식에만 집중했다.

모니터 결과를 보면 8개 일간지 모두 여자 양궁 단체전 사진을 1면 톱으로 실었다. 하지만 동메달을 1면에서 언급한 기사는 <또 금 명중···신궁 코리아 ‘33년 불패 신화’>(한국일보, 7월 26일)가 유일했다. 또 이날 동메달을 딴 유도와 펜싱 모두를 앞쪽 지면에 배치한 곳은 <한겨레> 뿐이었다. 

메달 색깔에 치중한 중계방송 해설도 시청자들의 눈총을 받았다. 지난 26일 안창림 선수가 남자 유도 동메달을 딴 순간 정병문 MBC 캐스터가 “우리가 원했던 색깔은 아닙니다만”이라고 말한 것에 논란이 일었다. 또 지난 8일 마라톤에 출전했다가 통증으로 레이스를 포기한 오주한 선수를 향해 “완전히 찬물을 끼얹네요”라고 말한 윤여춘 MBC 해설위원의 발언도 부절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7월 26일 양궁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1면에 배치한 8개 일간지 ©민주언론시민연합
7월 26일 양궁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1면에 배치한 8개 일간지 ©민주언론시민연합

메달과 상관없이 경기 내용에 만족한 선수들과 최선을 다한 모습에 응원을 보낸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보도들이었다.   

지난 1일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 35의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4위에 올랐던 우상혁 선수는 경기가 끝난 후 “후회 없는 경기가 맞다. 저는 행복하다. 오늘 메달은 비록 못 땄지만 괜찮다”며 메달을 따지 못해도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도 여자 76kg급 경기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 등으로 동메달을 놓친 뒤 눈물을 보였던 김수현 선수의 SNS에는 “메달과 그 색으로 잠재력을 평가할 순 없다. 이미 잠재력을 보여주셨다” “본인 탓 하지 말고 창피해하지도 말라” 등 위로와 격려의 댓글들이 달렸다. 

지난 6일 여자배구팀의 브라질전을 예고한 연합뉴스 <김연경과 투혼의 여자배구, 오늘밤 9시 '삼바배구 넘는다'> 기사에도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는 제목이라고 꼬집는 댓글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엄청난 기대와 부담을 주는 기사제목으로 낚시질하는 기자와 언론사의 책임도 고민해보자", "한국 스포츠 언론의 수준을 보여주는 기사다" "이기면 너무 좋겠지만, 언론도 표현을 좀 신중해달라"는 등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올림픽 막바지에는 언론의 보도 태도에 전향적인 변화가 엿보이기도 했다. 여자배구대표팀의 4강 경기를 <‘더이상 물러서지 않겠다’ 그대들은 이미 승자>(중앙SUNDAY, 8월 7일)라는 제목으로 전하고, 올림픽 기간 선수들의 선전을 <노메달이면 어때, 그대 땀과 눈물이 金>(동아일보, 8월 9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만큼 언론도 기존의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찬민 인하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세대가 바뀌면서 선수의 성과를 국가 전체의 승리감 보다는 개인의 성취로 접근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이미 일부 다른 나라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현재 한국은 그 과도기에 와 있는 것 같다”면서 “경기 결과를 기사에 안 다룰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메달이나 기록을 성공과 실패의 구분 잣대로 보도한다면 국민들의 호응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준성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젊은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날수록 경기 성적만큼이나 그 과정을 즐기는 문화가 더 깊어질 것”이라면서 “성적이 나지 않는 종목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판하고자 접근한다면 더 이상 관심을 끌기 어렵다. 다만 (훈련 과정에) 부족함이 있어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면, 앞으로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짚는 건설적인 기사는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성취' '과정의 즐거움'에 주목하는 경향이 앞으로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현서 아주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올림픽 메달 순위를 국가 경쟁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나라가 문화 선도 국가 반열에 올라있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심어져있어 더 이상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언론은 경기 결과뿐만 아니라 훈련과정에서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보여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으로도 훌륭하다는 메시지를 안겨줄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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