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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아주 오랜만에 동기 모임을 가졌다. 한 회사에 다니지만 함께 얼굴 한 번 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직종이 다른 기자 동기들은 낯설기까지 하다. ‘맞아, 저 친구도 우리 동기였지’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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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종의 차이는 겉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기자들은 대체로 깔끔하다. 정장에 넥타이까지 챙겨 매고 제법 기자다운 표정까지 갖췄다. pd들은 역시 pd답다. 좋게 말하면 활동적인 복장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후줄근하다. ‘복장 같은 거 아무려면 어때’하는 초연한 표정까지 짓고 있다. 후줄근한 차림과 잘 어울리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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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복장이 아니라 표정만으로 직종 구분이 가능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방송사에서 14년이라는 시간은 직종별 표정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세월인 것이다. 수습 교육을 받고 있는 pd 후배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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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들의 동기들인 수습 기자나 수습 아나운서, 또는 엔지니어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신입사원다운 결의로 상기된 얼굴, 단정한 정장 차림, 그리고 긴장된 몸짓까지 그저 ‘신입’다운 겉모습뿐이다. 이 순진한 영혼들은 지금부터 어떤 시련과 모험과 좌절과 극복을 통해 ‘후줄근한’ pd가 되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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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직후 “넥타이 좀 풀어버려라”고 이야기하던 선배가 있었다. pd에게 정말 중요한 건 자유로운 창의력이다, 겉모습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그저 편안한 복장을 해도 된다는 것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알고 보면 그리 철없이 좋아하기만 할 일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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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보면 ‘넥타이를 푼다’는 것은 전문가가 된다는 뜻이었다. 방송의 전문가로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프로그램에 쏟아 붓는다면 넥타이 따위를 매고, 안 매고 하는 데는 관심을 돌릴 여유도 없다, 그런 직종에 네가 지금 들어와 있다, 장난이 아니다, 자유롭게, 네 모든 것을 걸고 방송을 해라, pd가 되어라, 이런 뜻이었던 것이다. 그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제법 괜찮은 프로그램도 몇 개 정도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저 후줄근하기만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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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후배, 신입 pd들에게 말하고 싶다. 넥타이나 정장 따위를 매거나 입지 않아도 좋다는 선배들 말씀, 그거 그리 반갑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중요한 건, 이 ‘real world’에서는 오직 여러분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의해서 여러분 자신이 평가될 뿐이라는 것. 좋든 싫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은 곧 pd의 표정을 갖게 될 것이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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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입사 동기들 사이에서 자신이 후줄근한 pd의 겉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소 씁쓸해하며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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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pd는 소모적인 직종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건강하고 단정한 젊은이들이 이 동네에서 지치고 추레한 중늙은이가 되어간다. 늙는 거야 무슨 짓을 한들 막을 수 있을까마는, 문제는 이 일이 다른 어느 직종보다도 높은 집중력과 업무 강도, 그리고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평균 수명이 가장 짧은 직종이 언론인이며 그 중에서도 방송 pd가 최단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 지경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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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여러분,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하지만 한 동안 수고는 더 계속돼야 할 것 같군요. pd들도 할 일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만큼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후줄근하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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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 / cbs 편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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