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대신 장애 부각한 도쿄패럴림픽 보도...낡은 '극복 서사'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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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대신 장애 부각한 도쿄패럴림픽 보도...낡은 '극복 서사' 여전
"시각장애 뛰어넘는" "심지어 백스핀도 가능" 차별적 표현 난무
"'장애 극복' 비장애인의 관점...당사자 중심 관점 필요"
  • 장세인 기자
  • 승인 2021.09.02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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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2020 도쿄패럴림픽 탁구 남자 단식(스포츠 등급1)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국기가 게양되고 있다. 2021.08.30. ©뉴시스
30일 2020 도쿄패럴림픽 탁구 남자 단식(스포츠 등급1)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국기가 게양되고 있다. 2021.08.30. ©뉴시스

[PD저널=장세인 기자] '백색증도 시각장애도 뛰어넘은', '정말 힘든 고비를 이겨낸 선수들' 2020 도쿄패럴림픽 출전 선수들의 활약을 전하고 있는 보도와 중계에서 낡은 장애 극복 서사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오는 5일 폐막하는 도쿄패럴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는 총 86명(14개 종목). 도쿄올림픽 기간에 정규 프로그램을 결방하고 온종일 경기 중계를 편성했던 방송사와 선수들의 얼굴로 1면을 장식했던 신문에서 패럴림픽 선수들의 경기 소식은 일부러 찾아봐야 할 정도로 적다.

언론이 패럴림픽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는 것도 아쉽지만, 이마저도 장애인 선수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두드러진다. 장애인 스포츠 경기 보도는 비장애인 경기와 다르게 성과보다 장애를 부각하는데, 패럴림픽 보도에서도 이런 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가 패럴림픽 개막 하루 전인 8월 23일부터 8월 31일까지 보도한 패럴림픽 관련 기사 16건 가운데 6건은 장애를 강조한 제목이 달렸다.  <팔이 없으면 입으로... 이것이 패럴림픽>, <다리를 못 써도... 우리의 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발로 공 띄워 서브... 양팔 없어 라켓물고 스매시>, <세계 유일 손발 없는 펜싱선수, 패럴림픽 2連覇> 등의 제목은 선수의 이름보다 장애에 눈길이 머물게 했다. 도쿄올림픽을 통해 많은 선수들이 이름을 알린 것과 달리 폐막 사흘 전까지 패럴림픽 선수 한 명의 이름도 떠올리기 어려운 건 이런 보도의 영향이 크다.    

<조선일보>는 도쿄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금메달을 딴 스페인 로드리게스 선수를 조명한 <백색증도 시각장애도 뛰어넘은 鐵의 여인>에서 “스페인 여의사 로드리게스, 백색증 안고 태어나 멜라닌 색소 결핍으로 신체 대부분이 하얗다. 이 유전 질환의 영향으로 양 눈의 시력은 5~7% 정도만 남았다”고 로드리게스를 소개했다.  

조선일보 8월 30일자 보도.
조선일보 8월 30일자 보도.

장애를 극복한 선수와 가족들의 서사는 패럴림픽 보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겨레>는 탁구 단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서수연 선수의 경기 소식을 전한 <서수연의 도전... 2개 대회 연속 ‘값진’ 은메달> 기사를 “삶의 비극은 불시에 찾아온다. 서수연이 그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경향신문>은 8월 31일자 <청각장애를 넘어 ‘프로의 꿈’... 그의 곁엔 늘 아버지가 있었다>에서 야구선수 김동연의 아버지에 대해 “갖은 고초를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강조하며 “훈련하기 위해 출퇴근길을 함께했고, 일본에 갔을 때도 동행했다. 아들이 듣는 것을 조금 불편해하자 아버지는 의사소통을 돕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기 중계에서도 선수들의 장애를 언급하는 해설은 단골로 등장했다.  

전민재 선수가 출전한 도쿄패럴림픽 육상 여자 200m 결승 중계에서는 “네, 그런(뇌병변) 장애를 딛고 정말 네 번째 패럴림픽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휠체어 농구 남자 예선 A조 경기에서는 SBS 캐스터가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를 제가 처음에 영웅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미 정말 힘든 고비를 이겨낸 선수들이거든요”라고 말하자 임찬규 해설위원(서울시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이 “시청자분들께서 아셔야 될 것이, 장애를 보시지 마시고 선수들의 경기력을 봄으로 인해서 이 패럴림픽의 의미가 더 가치 있어지는 것”이라고 당부하는 모습도 전파를 탔다. 

MBC 유튜브 채널 <엠빅뉴스>는 패럴림픽 탁구 경기 영상에 <한쪽 팔다리가 마비돼도... 양쪽 팔이 없어도... 패럴림픽 감동의 탁구 명승부!!!>라는 제목을 달았다. 박홍규 선수 입장 화면에는 “휠체어를 타고 입장한 박홍규 선수, 16년 전 사고로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됐다”라는 자막을, 상대 이집트 선수 소개 화면엔 “양팔이 없다”라는 자막을 강조해 붙였다. 

경기 장면에는 '심지어 백 스핀도 가능하다!', '감각을 잃어버린 팔로 스매시를 꽂아 넣어',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는 혼신의 랠리' 등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바라본 시각의 설명이 줄줄이 이어졌다. 

엠빅뉴스 영상 화면.
엠빅뉴스 영상 화면.

모두 장애인 스포츠 중계·보도에서 지양해야 하는 태도다.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가 2018년 평창 동계패올림픽 당시 10대 일간지를 모니터링한 <모니터링 리포트>에는 스포츠 보도에서 피해야 할 다섯 가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장애인을 ‘인간 승리의 드라마’ 혹은 ‘감동의 원천’으로 묘사 △‘소아마비를 딛고’처럼 ‘장애 극복’을 강조하는 경우 △신체 손상을 상세하게 부각하거나 장애와 질병을 동일시하는 경우 △장애를 무기력함, 불행, 절망, 수치 등으로 묘사 △장애인 가족(특히 배우자와 어머니)을 죄인 또는 영웅으로 묘사하는 경우 등이다. 이번 도쿄패럴림픽 보도를 보면 2018년 평창 패럴림픽 보도에서 지적받은 문제가 되풀이된 셈이다. 

김성곤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사무처장은 “장애를 인정하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장애인 정책의 최고 목표”라면서 “언론이 장애인 선수를 다른 존재로 보도하거나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 극복이라고 표현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극복할 의지가 없거나 뒤처진 존재가 된다. 장애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해야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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