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D.P.'가 일깨운 방관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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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D.P.'가 일깨운 방관의 대가
판타지로 소비했던 군대 예능...군대 소재 드라마가 드문 이유는
사회 도처에서 발견되는 '방관자=가해자' 메시지 왜 외면했나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1.09.15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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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군대 소재 콘텐츠라고 하면 대부분 떠오르는 게 예능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예능에서 군대 소재는 일종의 스테디셀러였다.

메기 병장이 떠오르는 KBS <유머일번지>의 ‘동작그만’, “제 어머니가 맞습니다!”로 기억되는 MBC <우정의 무대>, 연예인들의 멘붕 병영 체험기를 담은 MBC <진짜사나이>, 최근에 이를 패러디해 화제와 논란을 낳았던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 그리고 팬덤까지 만들어냈던 채널A <강철부대>까지... 군대 소재 콘텐츠들은 대부분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드라마는 KBS <태양의 후예>나 tvN <사랑의 불시착> 정도인데, 이 드라마가 군대 소재 콘텐츠라 보긴 어렵다. 군인이 나온다는 정도일 뿐(그것도 판타지 영웅으로).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진짜 군대를 제대로 들여다본 콘텐츠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새삼스레 던져졌다. 예능 프로그램은 단지 군대 특유의 서열 문화를 뒤틀어 웃음의 코드로 소비하거나, 혹은 빡센 훈련 과정을 리얼리티쇼로 구성해 역시 웃음으로 소비하는 것이 군대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최근 <가짜사나이>나 <강철부대>도 그 강력한 훈련강도를 자극으로 만들거나, 혹은 그 결과로서 체력, 정신력을 갖춘 군인들을 판타지화 하는 정도로 소비됐다. 그러니 군대의 여전한 가혹행위나 그것이 근절되지 않는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같은 건 아예 없는 것처럼 치부됐다.

예능 프로그램이 웃음과 재미를 목적으로 군대를 소비해온 것이 잘못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지금껏 단 한 번도 진지한 군대 내 변하지 않는 부조리한 문제들을 끄집어낸 콘텐츠가 거의 없다(2005년에 윤종빈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있었지만)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이 문제를 외면하고 방관했는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탈영병을 잡는 탈영병 체포조(Deserter Pursuit)를 소재로 한 <D.P.>는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이 탈영병을 잡는 수사과정을 담지만, 동시에 차츰 왜 그들이 탈영했고 또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탈영 끝에 파국에 이른 조석봉(조현철) 사병이 그 절망의 끝에서 던지는 한 마디는 방관자였던 우리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다들 방관했으면서..”

맞다.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 했다. 심지어 그 경험을 했던 군필자들은 전역과 더불어 군부대를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그 아픈 트라우마의 기억들을 지웠다. 2014년 ‘윤일병 사망사건’과 ‘임병장 총기 난사사건’이 터지며 군대 내 가혹행위가 엄청난 이슈로 떠올랐지만, 금세 잊힌 건 이런 의도적 방관들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어서였다.

당연히 사건은 계속 터졌다. 최근에도 공군과 해군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은 부사관들이 2차 피해를 지속적으로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2020년만 해도 무려 42명이 군대 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방관의 대가는 지금도 계속 치러지는 중이다. 

하지만 <D.P.>가 던지는 ‘방관자’들 역시 또 다른 가해자였다는 메시지는 군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그 위계 시스템을 거의 비슷하게 운용하는 사회 내의 많은 조직들에서는 피해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그 때 잠깐 주목했다가 금세 잊히는 일들이 반복된다.

딱 봐도 사고가 나올 수밖에 없는 노동현장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 방치하고, 사내에서 툭하면 벌어지는 상관의 갑질이나 언어폭력 심지어 성폭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관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코로나19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일용 노동자들이나, 노숙인들이 결국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었으면서,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들이 눈앞의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걸 다 알고 있었으면서, 직장 내 승진 인사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엄청난 스펙이 아니면 이력서조차 내밀지 못하는 취업현실 속에서 청춘들의 질식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 우리는 방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무수히 많은 그 방관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건 파국이다. 저 <D.P.>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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