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닉스', 불사조의 자기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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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닉스', 불사조의 자기증명
아우슈비츠 생존자 넬리의 자아찾기
  • 신지혜 시네마토커 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 승인 2021.09.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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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닉스' 스틸컷.
영화 '피닉스'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넬리는 실력 있는 가수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녀였고 좋은 친구들과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다. 넬리의 약점은 그녀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넬리가 부유하고 재능이 있고 독일인 남편과 친구가 있었다 해도 넬리는 결국 유대인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수용소에서 지내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넬리는 레네와 함께 돌아온다. 마음의 상흔을 안고 무너진 얼굴을 들고. 아무도 모르게 간신히 차 한 대를 끌고 두 여인은 그렇게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의사는 말한다. 이전에 찍은 사진도 마땅한 것이 없고 얼굴이 많이 손상되어서 복원수술이 아닌 재건수술을 해야 한다고. 레네의 간호와 도움을 받으며 서서히 회복되어 가던 중 넬리에게 남겨진 유산이 꽤 크다는 것을 알게 되고 레네는 이 돈을 꼭 되찾아서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데 쓰자고 한다. 

하지만 넬리에게는 하루 빨리 이루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로 남편 조니를 찾는 것. 넬리는 얼굴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자 그를 찾아 나서고 클럽 피닉스에서 막일을 하는 남편을 보게 된다. 하지만 얼굴이 좀 바뀐 탓일까. 아내가 수용소에서 죽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일까. 조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일자리를 마련해줄까”하고 묻는다. 자신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넬리는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조니는 넬리에게 제안을 한다. 아내의 유산을 챙기려면 아내가 살아 있어야 한다고. 당신이 내 아내처럼 꾸며서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것으로 하자고. 그렇게 돈을 찾게 되면 보수를 주겠다고. 넬리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남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망을 내비치지도 않고 자신이 누구인가 밝히려고 안달하지도 않고 그저 다정한 눈빛으로 조니를 바라보며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레네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다. 넬리가 자신의 돈을 찾을 생각은 뒷전이고 자신을 고발해 수용소에 넘긴 조니를 도와 재산을 넘길 생각이라니. 그 돈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지 독일인 남편을 위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조니는 대체 넬리를 조금도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글씨체를 연습시키고 아내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원피스를 입혀 걸음걸이를 봐주면서 눈앞의 그녀가 넬리와 이렇게 비슷한 수 있는가, 한치의 의심도 없단 말인가. 

넬리의 역할을 하게 될 넬리가 말한다. “수용소에서 막 나온 사람이 이렇게 좋은 옷과 구두를 어디서 얻을까” 하고. 지인들과 즐거웠던 한 때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조니는 말한다. 그들은 누추한 생존자가 아니라 넬리를 원한다고.

드디어 ‘넬리’가 돌아오는 날. 지인들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오고 조니는 초조한 마음을 안고 그들이 그녀를 넬리로 생각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렇게 자신이 원래 곳으로 돌아온 ‘넬리’는 자신을 사랑했던, 자신이 사랑했던 지인들을 둘러보며 노래를 부르겠다고 한다. 조니는 습관대로 피아노 앞에 앉는데 그녀가 선택한 곡은 ‘speak low'. 넬리가 즐겨 부르던 곡이다. 그녀의 노래는 많은 것을 조니에게 알려준다. 

영화 '피닉스' 스틸컷.
영화 '피닉스' 스틸컷.

크리스티안 페촐트. 영화 <바바라>, <트랜짓>, <운디네> 등으로 세계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그는 어딘가 동화적이고 어딘가 신화적이며 살짝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영화 속에 풀어 넣는다. 어렵게 뒤튼 서사는 아니지만 일차원적으로 스르륵 읽히는 서사도 아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완성된다. 

<피닉스>는 2차 대전 직후, 수용소에서 돌아온 여자 넬리의 이야기이다. 얼굴이 훼손되어 재건수술을 받게 된 넬리는 그 자체로 한 차례 ‘피닉스’가 된다. 하지만 비슷한 듯 낯선 얼굴을 넬리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쉽게 가장 표면적이고 보편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역시 자신의 얼굴인데 말이다. 

넬리는 남편 조니를 찾아 그에게서 정체성을 얻고자 한다. 조금 바뀐 외모라 해도 습관, 분위기, 말투, 걸음걸이 등 한 사람이 갖는 고유한 특성으로 자신을 알아볼까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조니는 진짜 넬리를 두고도 알아차리는 기운이 없다. 자기 자신의 목표와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눈앞에 진짜, 진실을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어쨌든 넬리는 조니가 전수하는 넬리를 덧입으며 또 한 번 ‘피닉스’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 넬리가 'speak low'를 부르는 그 장면은 그녀가 ‘피닉스’가 되는 장면이다. 조니의 심경을 밀어두고 기차역에서부터 넬리가 돌아왔음을 굳게 믿고 환영하고 눈물을 흘리는 지인들의 행동은 이미 넬리를 인정하고 있었지만 피아노를 치던 조니의 흔들리는 모습은 그조차도 그녀의 정체성을 알게 된 것에 다름 아니며 그로써 넬리는 진짜 넬리의 위치, 진짜 넬리의 정체성을 되찾게 된다. 당신은 넬리를 알아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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