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면하고 싶은 질문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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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면하고 싶은 질문의 무게
자극적인 장르물과 로맨틱 코미디 속에 대중성과 거리 둔 JTBC '인간실격'
귤 한 개로 전해지는 진짜 위로...실격인 인간은 없다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1.10.01 15:2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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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부정(전도연)은 대필작가다. 그 누구도 대필작가가 되기를 꿈꾸지 않는 것처럼, 그 역시 좋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배우인 아란(박지영)의 책을 대필한 후, 그 책으로 아란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부정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다. 충격으로 아이까지 유산하고 출판사에서 퇴출되어 일용직 가사 도우미가 된 그는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글을 SNS에 올리면서 아란의 악플러가 됐고, 자살카페를 기웃거린다.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의 김지혜 작가가 이 여성 캐릭터를 ‘부정’이라 이름 붙은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존재를 부정당한 인물, 즉 ‘인간실격’ 판정을 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할대행 서비스’를 하며 살아가는 강재(류준열)도 마찬가지다. ‘대필작가’나 ‘역할대행’이나 자기 존재는 지워지기는 매한가지다. 결혼식, 장례식 같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한 번쯤 제대로 세울 수 있는 행사에 가짜로 동원되어 역할을 대행하는 강재는 심지어 자기 생일조차 아는 이가 엄마밖에 없는 인물이다. 어려서 절친인 딱이(유수빈)의 생일에 초대받아 갔지만 선물을 못 가져가 자기도 생일이라고 거짓말을 한 후로 친구들은 그의 진짜 생일을 모른다. 

<인간실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그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자신의 진짜 존재가 지워진 채 무언가에 덧씌워진 가짜 이미지로 살아간다. 부정의 남편 정수(박병은)는 백화점 식품매장 관리팀장으로, 갑질하는 고객들 앞에서 연실 웃으며 얼토당토않은 불만들을 받아주는 대가로 살아간다. 정수가 한때 좋아했던 경은(김효진)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는 남편을 간호하는데, 이 상황을 버텨내지도 또 그렇다고 떠나보내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사정은 부정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아란도 크게 다르진 않다. 멀쩡한 연기자 부부처럼 보이지만, 아란의 남편 진섭(오광록)은 젊은 여자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아란은 호스트바 실장인 종훈(류지훈)을 찾아와야 비로소 잠시 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고독하다. 관계가 엇나가 있고, 자신의 존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이들은 가짜 관계들로 그 고독이나 빈자리를 잠시나마 지워내려 한다. 강재에게 역할대행을 해 달라 모텔로 부른 부정은, 원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잠시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함께 누워 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좋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혼자 있고 싶고, 그렇지만 외롭기는 싫은 그런 삶. 그래서 역할대행 같은 무감한 서비스로 잠시 위안을 삼으며 삶에 별다른 애착을 갖지 못한다.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

<인간실격>은 이처럼 제목이 갖는 막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드라마다.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나 피와 살점이 튀는 자극적인 장르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존재의 고독을 담는 작품이 대중적일 수는 없다. 게다가 ‘고구마’ 가득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어떤 진지한 진짜 질문을 기대하기보다는 가짜 판타지라도 당장의 ‘사이다’를 요구하는 경향마저 생겼다. 전도연이 주연이고 멜로영화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과 김지혜 작가가 쓴 작품이라 신뢰가 가고 완성도도 높지만 ‘인간의 본질’을 묻는 진지함을 시청자들은 잘 버텨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처절한 존재의 고독을 담은 인물들을 인내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의외로 먹먹해지는 어떤 순간들이 다가온다.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고독한 인물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케이크 한 조각, 귤 한 개, 세모 커피우유와 크림빵 그리고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번 꼬깃꼬깃한 지폐 같은 너무나 작아 보이는 것들에서 심지어 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따뜻한 ‘선의’나 ‘마음’이 슬쩍슬쩍 보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거대한 볼거리나 탄산 가득 '사이다'가 주는 당장의 속 시원함으로는 결코 담아지지 않는 진짜 위로. 에둘러 ‘실격’이라 표현했지만 사실은 '실격인 인간은 없다'는 이 드라마의 전언이 말해주는 것처럼, 시청률이 조금 낮다고 해서 이 드라마가 실격인 건 아니다. 가짜가 아닌 진짜를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감동적인 드라마의 자격을 보여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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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2021-10-04 00:09:02
요일별 시청률을 보면 단 한차례도 시청률이 상승하지 않고 하락한다. 고정시청자층이 매번 이탈한다. 완성도? 무게? 그게 아니라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허접한 극본과 연출이다. 허세와 가식뿐이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름값에 눌려서 시청자들 탓할 게 아니다.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문화계 카르텔은 시청자들 선택 앞에 겸손하길 바란다. 만듦새와 내용 모두 공감대 형성 실패한 채 우중충 겉멋만 가득하니 추락하는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 멈춰라. 더 추락할 것이다.

지나가다가 2021-10-05 20:05:51
정덕현 평론가의 말마따나 어떤 진지한 진짜 질문보다는 당장의 사이다를 요구하고, 인간의 본질을 묻는 진지함을 못 견뎌하다가 허접이니 뭐니 비아냥거리는 평이 저기 아래 보이는군요. 저 댓글에서 누굴 가리켜 바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잘 보는 시청자도 있으니 쉽게 바보 취급하지 말라는 말은 하고 싶네요. 아무리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지만, '문화 다양성' 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꼭 대학 교양수업이나 교과서에서 가르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인가 싶어 서글프네요. 저는 정덕현 평론가의 말씀처럼 어떤 진지한 진짜 질문을 다루는 이 드라마를 인상깊게 잘 보고 있습니다. 극한 갈등, 치정 이런 감정도 살다보면 마주하는 것이지만 그런 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기에 이런 드라마도 필요합니다.

김영란 2021-10-04 21:45:51
예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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