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설맞이 축하공연' 광장에서 발견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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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설맞이 축하공연' 광장에서 발견한 변화
수평적 관계에서 공연 보는 관람자들...北 정서적 공감대 위해 변화상 주목 필요
  • 오기현 경주문화재단 대표(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고문)
  • 승인 2021.10.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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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설맞이축하공연을 성황리에 진행되었다"고 2020년 1월 1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2월 31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설맞이축하공연을 성황리에 진행되었다"고 2020년 1월 1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뉴시스

[PD저널=오기현 경주문화재단 대표(한국PD연합회 통일특위 고문)] 2019년부터 매년 1월 1일 0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는 <설맞이 축하공연>이 진행된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 만 명의 군중이 모여 공연을 관람하고 새해를 축하하고 불꽃놀이를 즐긴다. 전국의 TV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제제재 속에 자력으로 일궈낸 김정은 시대의 경제성과를 평가하고, 부강한 사회주의 강국건설을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한 것이다. 

2019년 <설맞이 축하무대>는 ‘1부공연- 제야의 종 타종과 축포발사 – 2부공연’을 실황중계(생방송)로 진행했다. 1시간 11분 52초 동안 피바다가극단, 국립민족예술단,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모란봉악단 등의 출연진이 모두 42곡의 가요를 부르고, 공연을 진행하는 MC는 따로 없다. 광장 중앙을 중심으로 무대 앞뒤에서 관람이 가능한 ‘관통형’의 메인 무대와 보조 무대를 배치하고, 광장 좌우의 건물과 광장 건너 주체사상탑에 다양한 조명을 설치해서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한다. 

영하 11도의 추위에도 가족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은 비교적 자유로운 태도로 공연을 관람한다. 관객들은 가족 혹은 친구 단위로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자녀를 무동 태우고 나온 젊은 가족과 외국인도 눈에 띈다. 헬로키티 풍선도 등장했다. 관객들은 외투, 목도리, 모자 등 이전에 비해서 다양해진 디자인과 색상의 패션 감각을 선보인다. 관객들의 차별화된 패션은 주민의 의식과 생활 속에서 탈규격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축포발사(불꽃놀이)와 드론공연은 공연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관객의 함성을 이끌어낸다. 북한의 방송과 공연문화역량을 총 집결시킨 대규모 이벤트로, 전례 없이 야외행사를 실황중계한 것은 방송기술발전과 정치적 안정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평가된다.

2020년 <설맞이 축하공연>은 모란봉 악단과 만수대예술단, 국립민족예술단이 무대에 올라 1시간 45분간 총 61곡의 노래를 불렀다. 남녀 무용단이 출연해 매우 빠른 템포로 제법 고난도의 율동을 선보인다. 2019년에 비해서 무대규모와 광장의 관람공간이 축소되었으나, 무대에서 객석으로 돌출된 통로인 ‘런어웨이’를 설치해 출연자와 관객의 정서적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시도를 했다. 

2021년 <신년경축공연>은 공연 외에도 ‘제야의 종 타종’과 ‘국가연주 및 국기게양식’을 선보였다. 57분 14초 동안 모두 18곡의 노래와 민족무용 북춤이 이어졌으나, 인민배우나 공훈배우급 가수 출연은 없다. 제야의 종 타종식은 역시 녹음으로 진행하는데, 평양종으로 추정되는 전통종을 먼저 3회 타종하고 음악종(편종)을 타종한다. 국기게양식에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대표하여 수도의 모범적인 근로자들이 참여했다. 무대는 예년에 비해서 더욱 단출해졌으며, 광장의 관람공간도 좁아졌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관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고, 가족단위 관객은 보이지 않는다. 

남북공연문화교류의 성과

 <설맞이 축하공연> 속에서 발견되는 가장 눈에 띄는 남북공연문화교류의 효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 공연무대의 설치’이다. 원래 북한은 규격화된 공연장을 벗어난 공연을 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2003년 10월과 2005년 8월 평양 정주영류경체육관에서 개최된 남한예술단의 체육관공연을 지켜본 뒤에 태도가 바뀌었다. 대규모 관객 동원이 가능하고, 무대를 입체적으로 꾸며 메시지를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설맞이 축하무대>는 기본적으로는 트러스를 골격으로 한 야외무대이지만, 파격적으로 무대 앞과 뒤 양쪽에 관객을 두고 공연을 진행하는 이른바 ‘관통무대’ 형식을 채택했다. 

2019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드론공연’은 그 직전인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다녀간 김여정 등 북한고위층에 의해 북한공연무대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공연(1218대)에 비해 훨씬 작은 규모(181대, 208대)이지만,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북한의 항공기술능력을 대내외에 효과적으로 과시한 측면이 있다.  

남한의 공연문화가 북한 측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반복된 화해와 긴장관계 속에서도 남북한은 자신도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1999년 평양에서 개최된 <평화친선음악회>에서 공연한 뒤 남한방송을 통해 소개된 북한의 민속무용인 ‘쟁강춤’이 현재 남한의 지방예술단에 의해 인기리에 공연 중이다. 북한가수 조청미가 부른 <림진강>은 유튜브에서 30만뷰 이상을 돌파하면서 남한에서 제법 인기곡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남한의 유명가수를 통해서도 불리고 있다. 

2019년부터 조선중앙TV를 통해 중계하는 북한 '설맞이 축하공연'
2019년부터 조선중앙TV를 통해 중계하는 북한 '설맞이 축하공연'

광장에서 발견한 변화

관심을 가져야 부분은 바로 무대 아래의 변화이다. <설맞이 축하공연>의 무대는 정해진 큐시트 범위를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무대 아래의 광장은 상대적으로 감정 표현과 이동의 자유가 허용된 공간이다. 박수와 함성을 통해 타인과 연대하고 무대 위의 퍼포먼스에 자율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는 구분되어 있지만 공연 진행자와 공연 관람자 간에는 ‘수평적인 관계’가 성립된다.

이제는 과거의 공연처럼 무대 위의 일방적 지시에 순응하고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공연내용의 호불호에 대한 개별적 의사표현이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음악이 있는 광장에서 변화가 시작된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반전운동과 사회저항의 에너지가 피어나던 서구의 60년대, 록음악과 우드스탁 페스티벌, 존 레논의 ‘imagine’이 새삼 떠오른다.

광장에 모인 관객의 참여 단위가 가족과 친지 중심인 것도 큰 변화이다. 최근 북한사회는 장마당의 등장으로 인한 경제생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배급이 줄어들면서 국가와 기관단체가 있던 자리에 장마당이 경제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물자의 공급이 시장 중심 체계로 바뀌면서 상품의 선택권은 물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넘어가는 중이다. 의사결정의 주체가 국가와 기관단체가 아니라 가정과 개인인 것이다. 장마당 경제의 주체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면서 행사참여의 기본 단위에 변화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다가오는 새해 0시, 김정은 시대 <설맞이 축하공연>은 또 다른 메시지와 퍼포먼스를 담아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정서적 공감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무대와 광장’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변화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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