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폭력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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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폭력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비필독도서 48] '모럴 컴뱃'
  • 오학준 SBS PD
  • 승인 2021.10.15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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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오학준 SBS PD] 어깨에 단단히 고정하고, 숨을 고른 후 방아쇠울에 검지를 집어넣고 두 번째 마디를 천천히 구부리면, 육중한 반동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귀를 틀어막아도 머리가 울릴 정도로 큰 소음이 가라앉는 데엔 시간이 꽤 필요하다. 사격장에 적막이 감돌 때까지 적어도 열 번은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 예비군 훈련 사격에 불과하지만, 피가 낭자하는 1인칭 슈팅 게임을 꾸준히 반복하며 게임 패드의 트리거 버튼을 빠르게 누르는 데 익숙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임은 고작 손가락 마디 하나의 근육을 키워줄 뿐이지만, 훈련은 살상 도구에 몸이 적응하게 만든다.

폭력은 게임으로 인해서 배양된다기보다는, 더 직접적인 ‘살인 훈련’이나 물리적 폭력의 대물림 속에서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심리학자 패트릭 M. 마키와 크리스토퍼 J. 퍼거슨이 공동으로 집필한 <모럴 컴뱃: 게임의 폭력성을 둘러싼 잘못된 전쟁>은 이런 궁금증에 대답할 수 있도록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오래된 오해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오랜 시간 “학교 총기 난사, 인종주의, 비만, 나르시시즘, 골연화증, 자기 통제 문제, 음주운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회적 병폐”의 원인을 비디오 게임에서 찾는 신화적인 믿음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책의 목표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도덕적 공황’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무고한 희생양 또는 사회의 적에 대한 공포를 과장해서 확대시키는 경향 또는 태도”를 뜻하는데,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고,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 공포스러운 매체의 유해성을 입증하려는 연구를 지원하고 확산시켜 결과적으로 공포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한다. 게임이 실제로 유해한지, 폭력적 게임이 정말로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보다는,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을 입증할 자료들만이 선별적으로 채택된다.

저자들은 “새로운 미디어 형식이나 테크놀로지가 등장할 때마다 사회는 자주 도덕적 공황을 겪는다”며 이 도덕적 공황을 일종의 세대 격차의 현상으로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다른 매체들이 겪었던 바대로 사라질 일시적인 문화적 마찰이라는 낙관적 시선을 견지한다. 중요한 것은 게임이 곧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결론이 아니라, 어떤 매체든 이러한 도덕적 공황의 제물이 되는 운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과 이를 위해 잘못된 믿음에 기반을 둔 문제 제기들을 정리해둬야 한다는 점이다.

패트릭 M. 마키와 크리스토퍼 J. 퍼거슨이 쓴 '모럴 컴뱃'
패트릭 M. 마키와 크리스토퍼 J. 퍼거슨이 쓴 '모럴 컴뱃'

게임만 사라지면 모두가 행복해질까? 빈곤, 정신병, 교육 불평등, 아동학대, 총기 소유의 자유화 등 사람들의 공격성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회 제도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종종 비디오 게임의 악마화를 통해 봉쇄되곤 한다.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들 가운데 1인칭 슈팅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반대로 그 게임을 즐기는 다수의 학생들 가운데 대다수는 실제로 총기를 난사하지 않는다는 통계는 자주 무시된다. 예외적으로 존재하는 범죄자들은 ‘왜’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을 마치 인과 관계로 묶여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상관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관계는 직관과는 다르게 복잡하다. 사회과학적으로 A라는 사건이 B라는 행동의 원인임을 증명하기란 난감하다. 차라리 물리적 차원에서라면 눈에 보이니 설명이 더 쉬울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이끄는 원인을 사람의 바깥에서 찾아 직접적으로 인과관계를 증명하려면 꽤나 높은 수준으로 정교한 주장을 해야 한다.

폭력적인 게임이 아이들의 폭력성을 증가시킨다, 라는 단순한 문장도 뜯어보면 손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폭력’, ‘폭력적인 게임’의 정의도 그렇거니와, 그 기제도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문제들을 정치적 의도에 따라 제기함으로써 공론장을 질식시키는 행위는 비단 게임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문제적 상황이 아니니, 우리는 이 책을 일종의 ‘논쟁 교과서’로 바라볼 수도 있다.

짧은 분량의 한계로 언론은 명료하고 간단하게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인과관계를 찾고자 하기에 종종 비약을 감행하지만, 날아간 자리에 남아 있는 자료들이 건네는 말은 다르다. 비디오 게임의 매출이 증가한 곳은 오히려 강력 범죄의 빈도가 감소했고, 폭력적 비디오 게임의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증가할 때마다 폭력 범죄 발생률은 줄어들었다. 이것이 비디오 게임의 순기능이라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비디오 게임과 폭력성의 발현 사이에는 인과관계를 설정할 만큼 밀접한 연관성이 없다는 근거로는 쓰일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폭력적 게임에 노출되면 폭력성이 높아진다는 실험들은, 실제로 폭력적 게임으로 발현된 폭력적 행동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없다. 사람을 때리거나 학대하거나 총으로 쏘는 실험은 윤리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실험 설계자들은 측정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스트레스 측정이나 구술 인터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게임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증가는 폭력적 게임에 노출된 탓일까,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게임 조작에 당황한 탓일까? 그 둘은 명쾌하게 구별해낼 수 있을까? 심리학 교수로서 두 사람은 게임 폭력성 실험들의 설계상 한계를 지적하며, 연구자가 바라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산출해낼 수 있는 연구가 무슨 의미인지를 묻는다.

2011년 게임 폭력성을 실험한다면서 취재진이 PC방 전원을 내려 큰 지탄을 받은 MBC 보도.
2011년 게임 폭력성을 실험한다면서 취재진이 PC방 전원을 내려 큰 지탄을 받은 MBC 보도.

따라서 저자들은 왜 사람들이 게임을 싫어하는지, 그리고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그 근거 없는 혐오와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연구자와 정치인, 부모님과 게이머들이 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가장 마지막 장에 배치된 ‘부모를 위한 전략 가이드’는 게임에 정신을 빼앗긴 아이들로부터 게임을 빼앗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같이 게임을 해보며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확인하고, 동시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믿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팬데믹의 시대, 게임과 같이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아도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가능한 활동은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WHO에서 2020년 #PlayApartTogether라는 캠페인을 펼치며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의 일환으로 집에서 게임을 즐기자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래도 코로나19와 함께 있는 동안 더 많은 시간 우리는 게임을 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일단 패드를 잡아보고 대체 그 사람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진지하게 물어볼 때다. 게임기 전원부터 내리기 전에. 그럼 나는 이제 마저 게임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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