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故 김춘수 시인의 타계와 특집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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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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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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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도 실린 그 시를 노래한 김춘수 시인께서 돌아가시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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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난 집에서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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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나답지 않게 새벽 4시까지 마신 술 탓에 출근이 좀 늦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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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잡아타고 어제 술자리에서 친구와 나눈 얘기들을 복기하면서 가던 중 사무실에서 급하게 찾는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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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나오란다. ‘밀린 일 몇 가지 재촉하려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사무실에 들어섰더니 아뿔싸! 김춘수 시인이 돌아가셨으니 당일 밤에 방송을 낼 수 있도록 빨리 서둘러 추모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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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뜰 녹화 두 편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만들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건가? 그렇지 않아도 가을개편 이후 여기저기 동원되어서 ‘땜빵’ 많이 해줬는데 또 나야?” 암만해도 이건 너무 무리한 일이다 싶어 화가 났다. “왜 나죠? 수요일에 녹화 두 개나 준비해야 하는데….” tv문화지대팀 다른 pd들은 오늘 녹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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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내가 제작하는 <낭독의 발견>을 제외한 월, 화, 목요일 방송분은 월요일 녹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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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pd들은 촬영 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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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반에 작가가 도착하고 자료화면을 여기저기서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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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만든 프로그램들은 암만 봐도 화면이 영 ‘아니올시다’다. 2001년도에 시인께서 직접 출연하신 화면이 그중 낫다. ‘아니 근데…리액션 커트는 왜 이리도 많은 거야.’ 다시 편집해야 한다. 2명의 pd를 지원받아 제작에 착수. 일단 1명은 오후에 빈소로 출동. 나는 작가와 확보된 약간의 자료화면을 보면서 구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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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보도국에서 뉴스에 낼 화면이 필요하다며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자료화면을 어서 넘기라는 전화가 온다. 거의 동시에 빈소로 출동한 pd에게서 연락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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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낮이라 사람들이 없고 고인의 시세계에 대해 인터뷰를 할만한 문인들은 전혀 안 보인다는 소식. 고인의 집을 찾아가서 그림 될 만한 거 되는 대로 촬영해 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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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다는 또 다른 영상자료는 도무지 올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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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가 넘어간다. 방송은 밤 11시 35분. 나머지 pd 1명이 급하게 문학평론가 한 분을 연락해 인터뷰 촬영을 나간다. 다행히 그분 댁이 여의도에서 가깝다. 일단 나는 편집 시작. 25분 방송인데 자료화면 급하게 붙이고 나니 8분 정도 때웠을 뿐. 그림이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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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나갔던 pd들이 오후 6시 30분에 들어온다. 편집 독려하고 자막 맞추어보고 저녁 8시에 제작편집 시작한다. 음악효과 담당자와 작가에게 반 정도 완성된 테이프를 카피해서 넘기고 후반부 7분은 제작편집하면서 붙인다. 그 와중에라도 디졸브(dissolve)도 넘기고 멋은 또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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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자막 포함한 비디오는 완성, 그리고 30분 후에 더빙 시작, 다행히 호흡이 척척 맞는다. 내레이션과 음악 믹싱 작업이 거의 ng없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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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처음으로 신난다. 11시 10분에 제작 완료. 테이프 들고 주조로 뛰어간다. 이런 식으로 방송 내는 건 처음이다. 다른 pd들은 한, 두 번쯤 겪었을지 몰라도 난 처음이다. 죽을 맛이었는데 테이프를 넘기는 그 순간 기분은 좋다. 방송은 나가니까. 같이 고생한 동료들이 정말 고맙다. 방송이 나갈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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