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오더', 재앙이 휩쓸고 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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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 멕시코에서 벌어진 혼돈의 디스토피아

영화 '뉴 오더' 스틸컷.
영화 '뉴 오더'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진행] 얼마 전 멕시코의 유명한 휴양지 칸쿤의 고급 리조트에서 총격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다급하게 대피한 휴양객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는데, 보도에 따르면 이 사건은 마약 조직의 충돌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멕시코의 치안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칸쿤의 경우는 다르다. 고급 휴양지로 소문이 나 세계 곳곳에서 휴양객,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서 총격이 발생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충격은 실로 컸을 테다. 

영화같이 느껴지는 이 상황은 근미래의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 <뉴 오더>를 떠올리게한다. 넒은 정원에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멕시코 부유층인 이들은 마리안과 빅토르의 결혼식이 열리는 마리안의 집에 와 있다. 서로들 잘 알고 지내는 친구, 지인들인데다 축하의 말이 가득한 날인만큼 모두의 표정은 여유롭다. 

그런데 작은 구름 한 조각이 끼어든다. 간헐적으로 욕실 수도에서 초록색 물이 나오고 시위대 때문에 교통이 마비되어 판사는 발이 묶이고, 지인 부부는 초록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채 도착했다. 시위대의 폭동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리안의 집이 있는 이 쪽은 아직 안전해 보인다. 

하지만 폭도가 된 시위대가 이내 저택에 들이닥치고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위대에 막혀 옛 고용인의 집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려 한 마리안은 군인들에게 잡혀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그 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감금되어 있다. 

폭도가 된 시위대는 시민들을 위협하고 자신들의 마음대로 도시를 휘저으려 하고 군인들은 시민들을 납치해 몸값을 뜯어내려 한다. 무질서와 혼돈의 시간 속에서 비극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숨통을 조여 간다. 

이렇게 막막함을 안겨 주는 영화라니. 마치 영화 <최종병기 활>처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날에 들이 닥친 공포가 급격히 도시의 곳곳을, 시민들의 일상을 좀먹으며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시위대와 군인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놀랍도록 닮은 행동을 보인다. 두 집단은 혼란과 불법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난 뒤 스스로가 부여한 힘(또는 권력)을 손에 쥐고 통제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규칙을 만든다. (어쨌거나 두 집단의 새로운 규칙은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것이고 불법적이며 야만적인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니 당위성을 갖지 못한다)

영화 '뉴 오더'
영화 '뉴 오더'

평온한 시절에는 그 속을 알 수 없다. 단적인 예가 마리안의 집 고용인들이다. 이 끔찍한 지옥도에서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마리안이 아무리 부유하고 권력자들과 가까워도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다.

영화 <뉴 오더>는 과연 ‘뉴 오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를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 시대가 어떤 것이어야 하며 그 질서를 어떻게 잡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숙고와 고찰이 없는 한 ‘새로운 것’은 새롭지 않고, ‘질서’ 또한 질서일 수 없다. 

영화 <뉴 오더>와 멕시코 칸쿤의 사건은 짧은 시차를 두고 묘하게 겹쳐지는데 영화가 공포스러운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히 현실의 칸쿤은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영화 속 멕시코 가상의 도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현실과 영화가 서로 닮아 가는 상황은 그래서 우리에게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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