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섬뜩한 사법시스템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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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섬뜩한 사법시스템의 민낯
살인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대학생 현수, 이유 있는 흑화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1.12.21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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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오리지널 '어느 날'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어느 날'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어느 날>은 BBC <크리미널 저스티스(2008)>가 원작이다. 어느 날 아버지 택시를 끌고 나갔다가 우연히 타게 된 홍국화(황세온)와의 하룻밤을 보내곤 살인용의자가 되어 재판을 받게 된 현수(김수현)가 겪게 되는 일들을 다뤘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수차례 주장하지만, 결코 믿지 않는 형사, 검사, 재판부, 언론의 ‘확증편향’이 현수를 미치도록 만들고, 점점 범인으로 몰아가는 그들로 인해 현수 스스로도 자신이 범인은 아닐까 착각하기도 한다. 약과 술을 먹고 정신을 잃은 사이 벌어진 일인 데다, 너무 무서워 쓰러져 있는 홍국화를 두고 신고도 하지 않고 도주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현수는 범법자들의 폭력이 일상인 구치소와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법정을 오가면서 점점 변해간다. 처음에는 두려움에 떨며 아이처럼 울던 그는 어느 순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변하고,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에서 억울해하던 모습은 그 지독한 일들을 겪으며 이제 하품을 할 정도로 냉소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강간살해범으로 몰려 구치소에서 폭력의 대상이 되곤 했던 현수는 살아남기 위해 강해지려 애쓰고 자신을 챙겨주는 교도소 내 권력자 도지태(김성규)를 점점 닮아간다. 담배 한 대 태우지 못했던 현수는 도지태처럼 몸에 문신을 새기고 담배는 물론 마약까지 하는 모습으로 흑화된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생존을 위한 변신은, 법정에서는 ‘반성 없는 태도’로 비친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어느 날' 예고편.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어느 날' 예고편.

그나마 현수를 진심으로 돕는 인물이 잡범들만을 다루는 삼류 변호사 신중한(차승원)이라는 사실은 법도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실력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 신중한이 잡범들만을 다루는 삼류 변호사가 된 건 그가 돈과 권력만을 좇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있어 보이고 신뢰감을 주는 양복과는 정반대로, 고질적인 아토피로 구두도 못 신어 슬리퍼를 끌고 법정에 나오는 신중한은,  진실보다는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더 따라간다는 사실을 현수에게 말한다. 법정에서의 싸움은 진실이 아니라 더 그럴 듯한 스토리를 누가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고. 

<어느 날>은 그래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찾아야할 법정이 검사든, 변호사든 혹은 재판부든 자신들의 실적을 위한 전장이 됨으로써 정작 진실은 저 뒤편으로 물러나게 되는 사법제도의 허점을 건드린다.

검사 안태희(김신록)는 어떻게든 현수를 몰아세워 법정 최고형이라는 실적을 만드는 데 혈안이고, 형사 박상범(김홍파) 역시 현수를 범인으로 확정해 다른 용의자들은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프로보노로 잠시 변호를 맡았던 로펌의 박미경(서재희) 변호사도 안태희에게 형량거래를 하는 등 진실보다는 실적만을 좇는다. 그래서 결국 모두가 바라는 대로 현수는 살인자가 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다행스럽게 끈질긴 신중한의 추적 끝에 진범이 잡히게되고 현수는 풀려나지만, 그 와중에도 그를 범인으로 몬 형사, 검사, 재판부의 사죄는 없다. 부장검사로 승진한 안태희는 미디어 브리핑을 통해 이것을 마치 의혹을 끝까지 추격해 진범을 찾아낸 검경 합동 수사의 ‘쾌거’라고 내세운다. 

<어느 날>은 제목에 담긴 것처럼 하루아침에 누구나 살인범이 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일을 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현수는 진범이 잡히면서 무죄로 풀려나지만, 그렇다고 현수에게 벌어진 일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첫 회 대학 캠퍼스에서 밝게 웃으며 친구들과 어울리던 현수의 그 얼굴이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변해있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잘못된 사법 시스템이 그렇게 한 대학생의 밝던 영혼을 검게 물들여 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어느 날>은 리메이크 작품으로서 한국적 리얼리티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특히 구치소 풍경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세트로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 가상을 통해 드라마가 전하려는 사법 시스템의 허점을 메시지로 읽어낼 수 있는 건, 김수현과 차승원 같은 배우들을 통해 몰입감 있게 잘 만들어진 장르물의 완성도 덕분이다. 이 만만찮은 완성도는 비현실을 통해 현실의 시스템을 환기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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