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단체 출근길 시위 예고했는데...'기습시위' '시민 불편' 부각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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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단체 출근길 시위 예고했는데...'기습시위' '시민 불편' 부각한 보도
"'왜 지하철을 멈춰야했는가' 이야기는 없어"
“시민 불편 최소화 위해 장소 등 시위 정보와 목적 보도해야”
  • 손지인 기자
  • 승인 2021.12.22 15: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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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 앞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이동권보장 반대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 앞에서 기획재정부 장애인이동권보장 반대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손지인 기자] 지난 20일 다수 언론이 출근길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켰다고 보도한 장애인단체 '기습시위'는 예고된 시위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전날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20일 오전 8시부터 '지하철 타기' 선전전을 벌이겠다고 미리 공지했지만, 언론은 지하철 운행이 1시간 넘게 지연된 뒤에야 '기습시위'와 '시민 불편'을 강조한 보도를 내놨다.   

전장연은 이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왕십리역, 행당역, 여의도역 등 5호선 역사 승강장에서 승하차 시위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왕십리역의 스크린도어가 파손되기도 했다. 

언론은 <장애인단체 시위로 5호선 지연…출근길 시민 불편>(이데일리, 12월 20일), <장애인단체 시위에… 지하철 5호선 1시간 넘게 지연>(매일신문, 12월 20일), <장애인단체 시위로 지하철 5호선 지연운행…안전문도 파손>(헤럴드경제, 12월 20일) 등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열차 운행이 지연된 점에 초점을 둔 기사들을 쏟아냈다. 열차를 지연시킨 장애인 단체를 향한 시민들의 날선 반응을 그대로 싣는 기사들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장애인들이 시위에 나선 이유는 생략되거나 짤막하게 언급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지난 21일 전장연은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이들은 ‘장애인이 지하철을 멈췄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일부는 지하철을 멈춰 세운 장애인을 향해 온갖 차별과 혐오의 욕설을 퍼부었다”며 “그런데 장애인이 ‘왜 지하철을 멈추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누군가에겐 단지 하루가 멈춘 일이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수십 년간 보장되지 않은 일상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리포트에 탑승한 노부부가 사망, 부상당한 일을 계기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보장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전장연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약속한 역사 내 엘리베이터 100% 설치 예산이 내년에 편성되지 않았다며 이날 지하철 타기 선전전을 벌였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서울지하철 역사 22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전장연은 장애인들이 버스를 편하게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저상버스 및 일반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교통약자법 개정안 연내 처리도 요구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를 두고 '출근길 교통 불편'을 강조한 언론보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를 두고 '출근길 교통 불편'을 강조한 언론보도.

언론 보도를 통해 시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전장연 시위 장소와 시간을 사전에 알린 보도는 <5호선 타시나요? '지각행'입니다…장애인 단체, 기습시위 예고>(아주경제, 12월 20일) 뿐이었다. 

<조선일보>는 지하철 운행 지연을 서울교통공사 탓으로 돌리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6정거장 가는 데 1시간”… 지하철 5호선 최악의 지연, 전날 예고됐다고?>(조선일보, 12월 20일)는 “서울교통공사는 전날 오후 6시 트위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미리 공지했다”며 “그러나 실제 서울교통공사 트위터 이용자(팔로어)는 1만9000명에 불과한 데다, 당일 시위는 왕십리역에서 발생해, 이 같은 공지는 이용객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라고 했다.

조선희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팀장은 “장애인단체의 시위로 시민들의 불편이 야기됐다고만 비판할 수 없다. 전장연 등이 사전에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언제·어디서 열리는지, 시민들이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보도가 없었다"며 "언론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시민들의 출근길 불편을 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희 팀장은 “시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시위 정보와 함께 장애인단체가 시위에 나선 목적을 함께 설명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시위 당사자 중심이 아니라 불편을 겪는 시민들 위주로 보도하면 문제는 반복되고, 사회적 자본은 낭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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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6 15:30:03
좋은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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