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잘 듣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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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듣는 시간’, 김현우 EBS PD가 전하는 경청의 힘

김현우 EBS PD가 펴낸 '타인을 듣는 시간'(반비)
김현우 EBS PD가 펴낸 '타인을 듣는 시간'(반비)

[PD저널=장세인 기자] “2019년 EBS <다큐프라임-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제작하면서 ‘차이’, ‘차별’ 같은 단어들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듣기 싫다’라는 대답을 들어온 분들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대답하는 분들은 대부분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자신들의 대답을 정해놓는 것 같았습니다.”

김현우 EBS PD의 독서에세이 <타인을 듣는 시간>(반비)은 “우리는 타인들의 이야기를 참 듣지 않는구나”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다양한 타인을 마주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 다큐멘터리 제작기 13편과 13편의 논픽션을 엮어냈다. 

김현우 PD는 “PD로서 차별성 있는 글을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제작 현장과 책을 하나씩 잇는 구성을 떠올렸다”며 “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논픽션은 다큐멘터리 제작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이라는 테두리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공동체의 발전 이전에 개인의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BS <다큐프라임-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의 제작기는 우리가 매일 신는 운동화가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지를 추적한다. 김 PD는 말레이시아의 고무나무 농장, 슬로바키아의 운동화 공장, 부산 신항에서 각기 다른 언어로 삶을 전하는 노동자를 만났다. 논픽션과 다큐멘터리를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삶을”이라고 정의한 김 PD는 운동화를 만드는 노동자를 보며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를 떠올렸다.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군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 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라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문구에는 “나의 생활을 가능케 하는 물건이 대부분 내가 탔던 컨테이너선에 실려 있었음을 생각하면 조지 오웰의 말이 타당하다”는 서평기를 덧붙였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공장 노동자, 장애인과 그 가족, 성소수자와 부모, 학교폭력 가해자 등을 마주한 저자는 듣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겠다’만 정해 놓고 시작해도 크게 도움이 된다”, “‘당신의 삶은 이러이러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라고 추측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단편적으로 노출된 누군가의 삶에서 어떤 부분을 알아보았다면, 그의 삶을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우선은 그 삶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는 조언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장애인-비장애인 커플을 장시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극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운 일화나 출연을 망설이는 상대 앞에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삶에 공감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공감을 자아낸다. 

김현우 PD는 “이 책이 공허한 메시지가 되지 않았으면 해서 제작현장의 이야기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제시하려고 했다. 독자분들이 그 사례들에서 현실성, 혹은 타인의 ‘실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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