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152명 근로계약 체결" 지시받은 지상파, '정규직 고용' 선긋기
상태바
"작가 152명 근로계약 체결" 지시받은 지상파, '정규직 고용' 선긋기
고용노동부, 3사에 “근로자성 인정한 작가들과 근로계약 체결” 18일까지 시정 지시
KBS "고용노동부 결정 존중"...방송사들 "정규직 고용 지시 아니야" 해석
청주방송, 지난해 근로자 판정받은 작가 5명 중 1명만 직군 변경해 정규직 고용
방송작가유니온 "근속 2년 이상 작가들 기간 정하지 않고 계약해야"
  • 손지인 기자
  • 승인 2022.01.05 1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상파 3사 사옥. ⓒPD저널
지상파 3사 사옥. ⓒPD저널

[PD저널=손지인 기자] 지상파 3사가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뉴스·시사교양 작가 152명과 근로계약을 체결하라는 시정지시서를 받아들었다. 고용노동부가 근로자로 판단한 작가 중에 2년 이상 일한 경우 정규직 고용 길이 열리지만, 벌써부터 무기계약직 등이 거론되고 있어 또 다른 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4월부터 KBS·MBC·SBS의 보도·시사교양 부문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진행한 고용노동부는 작가 363명 중 152명(약 42%)의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는 결과를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위탁계약을 벗어난 업무를 수행하고 방송사로부터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은 KBS 70명, MBC 33명, SBS 49명의 작가는 근로자성이 인정됐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자성이 인정된 방송작가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라는 내용의 시정지시서를 지난 30일 각 방송사에 전달했다. 방송사는 오는 18일까지 시정지시를 따라야 한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  이행 기간 연장이 가능하지만, 이달 중에는 계약 체결 여부와 형태 등과 관련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3사는 시정지시와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KBS는 먼저 "고용노동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지시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하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MBC와 SBS는 시정명령 이행 여부 등 전반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의 정규직 고용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KBS 관계자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의 근속기간 등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검토 중인 현재로서는 정규직 고용 검토를 말하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MBC 관계자도 “시정명령을 이행할 것인지, 할 거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아마 시정지시를 이행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며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명령은 아니니까 다양한 방법을 열어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측도 '정규직 고용'을 특정해 시정지시를 내리지 않아 방송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다양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한 관계자는 “기존에 맺은 계약서상의 근로조건에 저하지 않는 선에서 근로계약을 맺고, 노사합의가 된 사항은 그 합의를 존중한다는 대원칙을 제시한 것”이라며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말은 시정지시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2년 이상 근무한 작가들을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방송작가 일부가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CJB 청주방송 선례를 보면, 정규직 고용뿐만 아니라 무기계약직 전환도 쉽지 않다.  

지난해 4월 고용노동부는 故 이재학 PD 사망 사건 이후 청주방송에 대해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청주방송 소속 프리랜서 작가, PD, MD(방송운행책임자) 등 12명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방송작가유니온 등에 따르면 근로자로 인정된 작가 5명 중 방송작가 직군으로 정규직 계약을 맺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유일하게 정규직 고용 계약을 맺은 1명은 경영기획국 사무직으로 직군을 전환한 경우였다. 라디오 작가를 포함한 작가 3명은 프리랜서로 남겠다는 의사에 따라 1년짜리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으며, 또 다른 작가 한 명은 기간제 계약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은 “이번 근로감독 시정지시서에 근로계약을 체결하라고만 되어 있긴 하지만, 근속 기간 2년이 넘은 작가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는 추후 목소리를 키워야 하는 문제”라며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면 그 안에서 정규직과의 처우 차별이 분명히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0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근로감독 취지 몰각하고 방송사 꼼수 부당해고 방조하는 서울고용노동청 강력 규탄한다' 기자회견. ⓒ방송작가유니온
지난 30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근로감독 취지 몰각하고 방송사 꼼수 부당해고 방조하는 서울고용노동청 강력 규탄한다' 기자회견. ⓒ방송작가유니온

이번 근로감독에서 근로자성 판정을 받았지만, 계약기간 만료로 방송사를 떠난 작가들의 고용 문제도 분쟁 소지가 있다.   

지난 12월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을 낸 MBC <뉴스외전> 작가들도 이번 근로감독을 통해 근로자성을 인정받았지만 지난해 12월 말로 계약이 만료됐다.  

방송작가유니온은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방송사를 떠난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주휴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등의 체불임금을 정확히 계산해 지급하고, 요건을 지키지 않은 해고는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지상파 3사가 작가들에게 제시하는 근로계약서에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에 따라 성실한 이행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작가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기준법 제17조(근로조건의 명시)에 따라 소정근로시간, 임금 등 근로조건들을 서면으로 명시해야 한다. 이 때 작가들의 이전 경력과 업무 강도 등 지금까지 일했던 내용들을 충실하게 담아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작가들의 이전 경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거나 업무 강도에 상응하는 대가가 담기지 않은 근로계약은 ‘무늬만 근로계약’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