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박수선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가 정치인을 향한 미투 폭로에 대해 '돈을 안 줬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보이고 캠프 운영에 상당히 관여한 듯한 통화 내용이 MBC <스트레이트>를 통해 16일 공개됐다.
이날 <스트레이트>에선 국민의힘 측이 제기한 방송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인용된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 김건희씨가 통화한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에게 캠프 자리를 제안하거나 '조국 사태를 민주당이 키웠다'고 주장한 내용이 김씨 육성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의 강경 대응으로 이목이 쏠린 이날 <스트레이트>의 시청률은 전주(2.4%)보다 7배가량 치솟아 17.2%(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다.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이명수 기자와 김건희씨가 첫 통화를 한 건 지난해 7월 6일. 방송을 보면 “당분간 언론인 인터뷰를 안 한다”고 전화를 끊을 것 같던 김건희씨는 2019년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뉴스타파의 윤 후보 의혹 보도가 나오자 <서울의 소리>가 ‘응징 취재’를 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너무 감사해 딴 사람 이름으로 후원도 많이 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후 두 사람의 통화는 5개월 동안 52차례에 걸쳐 이어졌는데, 김건희씨는 이명수 기자에게 “우리 캠프로 데려왔음 좋겠다”며 캠프 자리를 제안하는 듯한 말을 여러번 했다.
김씨는 정치권에서 터진 미투와 관련해 “미투 터지는 게 다 돈 안 챙겨주니까 터지는 거 아니냐”며 성범죄와 미투운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건희씨는 <스트레이트>에 서면답변서를 통해 “윤 후보의 정치 행보, 캠프에 과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미투 발언에 대해선 “성을 착취한 일부 여권 인사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적절한 말이었다”며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17일 아침신문은 <스트레이트>에서 공개한 ‘김건희 녹취록’의 내용과 이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운 정치권의 반응에 주목했다.
<한국일보>는 3면 <국민의힘, MBC에 “뭐가 문제인지 지적을” 맞불 속 여론 촉각>에서 “국민의힘 안팎에선 김씨의 통화 내용이 윤 후보 지지율에 미칠 영향을 크게 걱정했었다”며 “하지만 방송 이후에는 안도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문제가 될 만한 부분도 있었지만, 김씨의 발언 수위가 ‘예상보다’ 세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라고 전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방송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방송에서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 되는지를 조금 더 명확하게 지적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스트레이트>는 오는 23일 추가로 통화 내용 공개를 예고한 상태고, MBC쪽에 녹취록을 건넨 <서울의 소리>, 녹취록을 따로 입수한 <한겨레>도 통화 내용을 공개하기 시작해 파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김건희 녹취록’ 내용을 전하면서 통화가 녹음된 과정과 의도를 문제 삼았다.
특히 <조선일보>는 이명수 기자의 녹취 과정을 ‘편법’이라고 규정하고 메신저 공격에 치중했다.
<조선일보>는 “이씨는 김씨에게 접근하면서 친여 성향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의 조언을 받았다”면서 “이씨는 7월 27일엔 열린공감TV가 보도한 정대택씨 관련 발언을 의도적으로 오보라고 보도한 뒤, 열린공감TV에는 ‘김건희에게 잘 보여야 한다. 소위 ’떡밥‘을 주기 위함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씨는 김씨와 첫 통화에서 <서울의 소리>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지만 <조선일보>는 “법원은 방송금지 가처분 사건 결정문에서 이씨를 ‘촬영기사’ 등으로 표현했다”고 강조한 뒤 ‘7시간 녹음 그 직원, 과거 유튜버 폭행 장면‘이라는 설명을 붙인 사진과 함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2020년, 이씨가 대검찰청 앞에서 보수 유튜버들과 충돌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대선 후보의 아내가 어떻게 남편이나 선대위도 모르게 외부인과 장기간 이런 통화를 할 수가 있나. 선대위 주변에선 ‘김씨는 성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의구심을 제기하면서도 “김씨 발언이 녹취되고 보도되는 과정에선 정치 공작 냄새가 풍긴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씨는 정치적 조언을 다 해줄 것처럼 접근한 뒤 사적대화까지 모두 녹음했다. 취재‧보도를 할 때는 취지를 상대방에게 알려야 하는데 기본적 언론 윤리도 무시했다”며 “본질은 사라지고 말초적 논란이 판치는 이상한 선거판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김씨도 공인의 배우자로서 신중한 언행을 해야 했다”고 김건희씨의 처신을 지적하면서 “MBC는 공영방송답지 않게 친정권적이라는 평을 받아 왔다. 두 매체(<서울의 소리> <열린공감TV>)의 편향성도 불문가지”라고 정치적 의도에 의심을 품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의 불쾌감은 알겠으나 사전에 보도를 막으려 했다거나 MBC에 항의방문을 간 건 적절치 못하다. 호재를 만난 듯 ‘본방사수’를 외치는 민주당도 부박하다. 국민의힘이 이재명‧김혜경 부부의 녹음파일을 틀 때 뭐라고 할 텐가”라고 반문하며 여야의 대응을 질타했다.
<한겨레>는 1면 <김건희 “캠프로 와…내가 시키는 거 해야지”>에서 김씨가 국민의힘을 “아마추어”라고 비판하고 “옛날에 국정원처럼 몰래 해서 알아오고 그런 것”을 이씨에게 제안한 내용이 녹취록에 담겼다고 보도했다.
“(캠프를) 움직이는 사람들 있을 거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우리 (친)오빠라든가 몇 명 있어요. 여기서 지시하면 다 캠프를 조직하니까”라는 통화 내용을 전한 <한겨레>는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로, 다각적 측면에서 인사나 일정, 전략 등에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김건희씨 통화 내용은 김씨의 오빠도 사실상의 비선으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내비친다”고 해석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국민들은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장막 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종한 국정농단의 실상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김씨와 윤 후보가 이 문제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할 경우, 만약 김씨가 대통령 부인이 된다면 국정에 사사로이 개입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국민적 의구심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정도의 형식적 해명으로는 국민을 납득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진솔하게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지는 것이야 말로 김씨가 보여야 할 자세”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국민의힘이 방송되기도 전에 ‘정치공작’ '권언유착2‘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옳지 않았지만, 언론이 김씨와의 52차례 통화를 녹음해 보도하는 게 정당하려면 그만큼 중대한 공적 사안이어야 한다”며 “공개된 김씨 발언이 진짜 심각한 흠결인지, 정치 공세에 가까운 의혹인지는 유권자가 판단할 것이다. 다시 내실 있는 선거가 되도록 정계와 언론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