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 뉴욕지하철 사망 사건 "가해자 흑인" 부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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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 뉴욕지하철 사망 사건 "가해자 흑인" 부각했지만...
외신, 인종 대신 가해자 범죄 전력 강조...국내 언론과 다르게 '동양인 혐오 범죄' 단정 안 해
“인종 혐오 범죄 비판 받아 마땅...‘약자 대 약자’ 갈등 조장 보도도 문제”
  • 장세인 기자
  • 승인 2022.01.19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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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17일자 보도 화면 갈무리.
KBS의 17일자 보도 화면 갈무리.

[PD저널=장세인 기자] 지난 15일(현지시간) 국내 언론이 '가해자 흑인'을 부각해 보도한 뉴욕 맨해튼 지하철 사망 사건. 한 남성이 미얀마계 여성을 선로에 밀어 살해한 이 사건을 외신은 가해자의 인종 대신 과거 범죄 전력에 주목했다. 국내 언론이 흑인과 특정 국가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에 사로잡힌 게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와 42번가 사이 지하철역에서 한 남성이 전차를 기다리는 여성을 떠밀었다. 선로에 떨어진 여성은 열차에 치어 현장에서 사망했다. 추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피해자는 미얀마계 여성이다.

외신을 인용해 한국 언론은 <뉴욕 지하철서 아시아계 참변... 흑인이 등떠밀어>(매일경제, 1월 16일), <美 뉴욕 지하철서 아시아계 여성 흑인 남성에 떠밀려 사망 ‘동양인 혐오 범죄’>(아시아투데이, 1월 16일), <美 증오범죄?... 지하철역서 흑인에 떠밀린 아시아계 女 ‘참변’>(한국경제, 1월 16일), <아시아 사람 죽게 하고 혀 내밀며 조롱한 흑인>(파이낸셜 뉴스, 1월 16일) 등 ‘흑인’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보도했다. 부제와 본문에는 가해자가 ‘아이티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국내 언론이 인용한 뉴욕타임스(NYT) 기사의 제목은 <여성, 타임스스퀘어 지하철역에서 떠밀린 뒤 사망해>, 뉴욕포스트 기사의 제목은 <정신병력 남성, 타임스스퀘어 지하철역에서 아시안 여성 밀어 숨지게 해>(1월 15일)였다. 두 기사 모두 제목과 본문에 피부색을 나타내는 ‘흑인’ 표현을 쓰지 않았다. 뉴욕포스트는 가해자가 ‘아이티’ 출신이라는 사실을 가해자 가족의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외신은 ‘동양인 혐오 범죄’라고 섣불리 단정하지도 않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가해자는 1998년 이후 세 차례 경찰에 체포된 전력이 있고, 강도 전과로 2년간 복역한 뒤 지난해 8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최근 20년간 정신질환으로 약물치료를 받았고, 병원에도 입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즈는 이를 토대로 “정신 병력을 가진 노숙인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사건을 정의했다.

그러면서 “보호시설을 찾다 지하철역에 머무는 노숙인과 정신 질환자 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심각한 도시범죄 중 하나인 지하철역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하철 노숙인들에게 다가갈 경찰 또는 정신건강 전문가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 혐오 범죄가 증가하고 있지만 가해자가 아시아인이 아닌 다른 여성에게도 범행을 시도한 점을 들며 인종 혐오 범죄 가능성이 낮다고 짚었다.

뉴욕포스트 역시 17일 사설을 통해 사건의 본질로 “뉴욕 시청에서 정신적 문제가 있는 노숙인을 지하철역에 방치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제목에 가해자의 인종을 강조한 언론보도 .
제목에 가해자의 인종을 강조한 언론보도 .

반면 다수의 국내 매체는 가해자가 아이티 출신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동양인 혐오 범죄'로 몰았다. 

TV조선은 16일 <뉴욕 지하철서 또 아시아계 女 참변... 흑인이 선로로 떠밀어 숨져>를 통해 “흑인 남성은 아이티 출신 61세”라며 “뉴욕 브롱스 지하철역에서도 동양인 여성이 구타당했다. 미국 언론은 이번 사건도 동양인 혐오범죄라고 진단했다”고 전했다. 

가해자의 인종과 출신을 부각하는 보도는 ‘약자 대 약자’ 갈등을 부추기고 특정 인종과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혜실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공동대표(이주민방송 대표)는 “한국 보도는 가해자의 국적을 부각해 화살이 해당 국적의 모든 이주민에게 돌아가도록 프레임을 짠다. 이 사건은 인종, 국적뿐만이 아니라 정신 병력을 가진 사람의 인권 문제, 지하철 노숙인 방치라는 구조적 문제 등을 짚어야 한다. 타국의 사건이지만 한국에서도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돌아볼 수 있게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인종 간 혐오범죄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고 폭력은 비난해야하지만 그렇게 만든 것은 사회 구조다. ‘약자 대 약자’ 갈등 구조로 보도하면 약자가 소속된 집단을 비난하게 된다. ‘흑인’, ‘이주민’, ‘남녀’ 등을 강조해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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