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라운드', 어쩌다 보니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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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운드', 어쩌다 보니 중년
영화 '어나더 라운드', 마흔 생일에 새로운 실험에 나선 네 친구
  • 신지혜 시네마토커
  • 승인 2022.01.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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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진행] 세월이 흘러 어정쩡한 나이가 되어 버렸다. 역사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쳐 왔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 마르틴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애매하고 서글픈 나이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성실하고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 온 멋진 삶이 이제는 느리고 색이 바랐으며 활기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마르틴과 니콜라이, 톰뮈와 페테르. 네 친구는 같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가르치는 과목이 다른 것처럼 네 친구는 성격, 살아가는 방법,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다만 그들은 같은 학교의 교사라는 것뿐 아니라 이제 서글픈 나이에 도달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날은 니콜라이의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 요즘 학생들의 태도, 전과 같지 않은 가족과의 관계 등등 불편하고 슬픈 이야기들이 오가다 니콜라이가 재미있는 제안을 한다. 혈중알콜농도에 대해 연구를 한 학자가 있는데 함께 실험을 해 보자는 것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혈중알콜농도가 0.05퍼센트일 때 활력이 생긴다는 것. 지금 모든 것이 살짝 꼬여 있고 권태롭고 무력하게 느껴지던 친구들은 그렇게 장난처럼 ‘실험’에 들어간다. 

마르틴은 수업에 들어가기 직전에 술을 마시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결국 입에 술병을 대고 만다. 알콜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알콜을 음용했다는 플라시보 효과 때문일까 아니면 될 대로 되라 식의 마음이 작용한 탓이었을까.

마르틴의 수업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호기롭게 진행되고 아이들은 자세를 고쳐 앉는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학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것을 가르친다고, 무능하다고 학부모회까지 소집할 정도로 항의를 하던 학생들인데 말이다. 

다른 세 친구도 마찬가지여서 활력을 되찾은 기분이다. 그렇게 네 교사의 수업 태도가 달라지면서 학생들 개개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유도 생기는데...

이제 네 친구는 ‘실험’을 조금 더 발전시켜 보기로 한다. 전에 없이 유쾌하고 긴장감도 없는 네 사람의 태도는 가족과 동료들의 의심어린 눈총을 받게 되지만 네 친구는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달려가 보기로 한다. 

아마, 그들 모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멈춰야 했다는 것을. 지금 당장은 빛을 낼 에너지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빛은 순간적으로 반짝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빛을 당견 쓴 대가를 어떻게든 치러야 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미 관성을 얻는 그들의 ‘실험’은 계속되고 네 친구의 생활은 점점 엉망이 되어 간다. 

그 와중에 교장에게 지속적인 음주에 대한 제보가 들어가고 교사회의가 소집되는데 하필 그 때 술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리며 들어 온 톰뮈의 행동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해 바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리고 제자들의 졸업식 날, 톰뮈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영화가 시작되고 '어라, 생각보다 재미있는 영화네' 하고 생각했다. 권태롭고 고리타분한 교사들(물론 그들도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는 그 누구보다 반짝이고 활기 넘치고 의욕이 앞섰으리라)이 혈중알콜농도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바뀌는 스스로와 가족, 동료, 이웃들과의 관계가 어쩌면 이 영화는 이렇게 흥겹고 즐겁게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역시나) 그럴 리가 있나. 이 영화의 감독이 토마스 빈터베르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95년을 기억하는가. 라스 폰 트리에와 토마스 빈터베르그, 크리스티안 레브링, 소렌 크라흐 야코브센은 ‘도그마 95’를 발표해 영화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은 영화의 직접성, 순수성을 표방하면서 그들만의 영화 찍기 방식을 내세웠지만 2000년대 들어서서 이 영화운동은 끝났다) 그러니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가벼운 영화를 만들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토마스 빈터베그르가 재미없고 무거운 영화만 만든다는 것은 아니다. 도그마의 감독들은 영화를 진짜 잘 만든다) 역시나 뒤로 갈수록 묵직하고 단단한 베이스가 느껴진다. 

그냥 그렇게 편안하고 웃음 가득한 영화를 끌어갈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알콜로 인해 살짝 흥분되고 발이 공중에 뜬 기분, 청춘의 어느 날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을 깨워 다시금 현실로 돌려놓고 삶의 무게가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알려 준다. 

마르틴과 친구들의 날은 이미 흘러가 버렸음을, 잠시의 눈속임은 가능할지 몰라도 이미 벌어지고 멀어진 것들을 온전하게 되돌릴 수는 없는 것임을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여실히 보여 준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예전에 재즈발레를 했다는 마르틴은 다시 한 번 (드디어) 춤을 춘다. 30년 만에 춤을 추는 그의 몸은 아직도 동작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의 몸은 이미 그 때의 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춤은 아직도 그가 그임을 말해 준다. 

마르틴의 춤과 학생들의 환호가 (학생들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다. 창창하고 밝은 시간이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르틴의 시간과는 다르게) 서글프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마르틴의 나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것인지 알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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