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세대론으로 읽히지 않는 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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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월 28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MZ세대라는 거짓말' 북 콘서트에서 축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뉴시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월 28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MZ세대라는 거짓말' 북 콘서트에서 축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뉴시스

[PD저널=박재철 CBS PD] 마스크가 피부가 됐다는 사실을 요즘 실감한다. 입 속에 이물감이 들어 그걸 뱉어냈는데 마스크를 쓴 채였다. 같은 실수가 몇 번 반복됐다. 그렇다면 이건 실수가 아니다. 실재다. 어색한 오월동주의 초기 단계를 지나도 한참 지나, 이제 마스크와 우리는 물아일체까지 온 듯싶다. 

마스크처럼 처음에는 입에 붙지 않다가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된 용어도 있다. 바로 ‘MZ 세대’다. 맥락상 ‘요즘 젊은 세대’를 일컫겠거니 하고 덩달아 쓰다가 좀 자세히 살펴볼 계기가 생겼다. “MZ 세대에 먹히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라는 요구 때문이다.

‘한글 세대’나 ‘베이비붐 세대’ 같이 전후 50년대생을 지칭하는 시기적 구획은 그나마 머릿속에 들어오지만 ‘민주화 세대’니 ‘미디어 세대’ 하는 세대론은 윤곽이 흐릿하다. 

MZ 세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MZ는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를 합한 것이라 범위가 넓다. 30대 직장인부터 20대 취준/대학생 그리고 10대 중고등학생까지 아우른다. 인구에 34.7%를 차지한다는 이들을 하나의 끈으로 묶는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MZ 세대가 자주 등장하는 곳은 소비시장과 선거 국면이다. MZ 세대론은 그 세대 ‘안’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그 세대를 ‘대상’으로 외부에서 붙인 기호라는 혐의가 짙다. 

구매력과 투표권을 가진 신흥군에게 기성세대는 매력을 느꼈을 법하다. 그러나 정작 MZ 세대는 그런 호명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크레페 케이크처럼 다양하고 두툼한 개성들을 납작하게 평면화해 하나의 세대론에 압착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MZ 세대라는 말은 마스크처럼 사람들의 입에 착 달라붙어 여러 담론장을 배회하고 있다. 어찌 보면 MZ 세대에 어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자 하는 나조차도 MZ 세대론을 적극 수용하면서 그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해보자는 얄팍한 계산을 깔고 있는 셈이니 이런 끌탕도 어지간히 위선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이재명 캠프 MZ세대 4인 인재영입발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이재명 캠프 MZ세대 4인 인재영입발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MZ 세대론의 부정확성과 이면성을 증류하고 나면 이 시대의 30대 이하가 갖는 몇 가지 변별성을 얻게 된다. 우선은 ‘디지털 도구의 생활화와 효능감’이다. 이 세대는 확실히 디지털에 강하다. 이건 단지 기술 발달에 의한 편의와 효용 증대만을 뜻하지 않는다. SNS와 스마트폰의 전면화는 정보 독점을 없앴고 공유의 습성을 강화했다.

당연하게도 이런 흐름은 가치와 자산의 독과점, 그리고 그에 따른 지대추구(새로운 부의 창출 없이 기존의 부에서 자기 몫을 늘리려는 행위)로 기득권을 형성한 ‘꿀빤 세대’와의 거친 불화를 예고한다. 모르면 몰랐으되 알고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다음으로는 ‘느슨한 연대와 다양한 공동체 구성’이다. 정보의 공유와 확산 그리고 변화의 효과를 확인한 세대적 경험은 “가만히 있어!”라는 명령에 “웃기고 있네!”라고 불복종으로 항거한다. 불의에 대한 분노, 불이익에 대한 대응을 더욱 거세게 그리고 발 빠르게 감행한다.

특별한 정치적 정파적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없어도 소규모로 점조직으로 자주 모이고 흩어지면서 남의 일에 자발적으로 간섭하고 엮인다. (격세지감인 게, 예전 우리는 그런 이들을 ‘지식인’이라고 불렀다.)

수평적으로 교류하고 직선적으로 메시지를 외화한다. 이는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나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 미투 이슈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상에서 표출된 분노와 대응은 오프라인으로 그 확장성을 뻗으며 기존 질서와 원칙을 세련화하거나 새 질서의 구축을 앞당긴다.   

끝으로 꼽을 수 있는 건 ‘개별성의 대두’일 것이다. ‘잘 살아보세’의 산업화 세대와 ‘민주주의여 만세’의 586 세대가 각각 다른 문구의 깃발 아래에 모여 굳게 어깨를 걸었다면 MZ 세대에게는 깃발 자체가 없어 보인다. 세대 구성원 모두를 묶어내는 정치적 명분도, 뚜렷한 목적도 사라졌다는 의미다.  

비유컨대, 구슬 목걸이의 끈이 끊어졌는데 이는 보석 목걸이가 그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 목걸이에 달린 구슬 하나하나가 이제는 보석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뜻이다. 젠더, 환경, 동물, 착한 소비, 자기표현 등이 계급이나 민족, 선진국 진입이나 공동체 가치 못지않은 값어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서열의 구조가 바뀌었다. 집단적 가치가 뒤로 밀려나고 개인과 취향이 앞선다. “조직을 위해서 네가 좀 희생을...” 이런 화법에는 조용히 조문을 고해야 할 상황이다.    

나와 적게는 10년, 많게는 40년 가까운 시간의 간극을 가진 세대와 소통하고 그들의 관심과 특성을 깨달아 프로그램에 녹여내는 일은 이제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수가 되고 있다. 이미 기성세대가 된 내가 인식의 눈금을 한 칸이라도 오해에서 이해 쪽으로 가게 하려면 결국은 서있는 곳을 달리 해야 된다는 결론이다. 

디지털 도구를 일상화하면서 누구와도 정보를 공유하고 느슨하게 연대하며 개별적인 취향과 가치관을 중시하는 영역에 내 스스로를 올곧게 세워야 한다. 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진다’(웹툰 송곳)는 걸. 솔직히 알면서도 어려워 그리고 내키지 않아 너무 오래 미뤄왔던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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