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지하철 출근길 시위 ‘왜’ 묻지 않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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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불편'만 강조한 장애인 지하철 시위 보도
장애시민은 평생 불편을 견디고 살았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문도 없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21년 2월 10일 오후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서울역 방면 열차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21년 2월 10일 오후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서울역 방면 열차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승하차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PD저널=이용석 한국장애인연맹 정책실장] 요즘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골칫거리는 지하철 5호선을 중심으로 계속되는 장애인단체의 시위인 듯하다. 연일 계속되는 장애인들의 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자 가뜩이나 코로나19 기승으로 감염될까 불안하던 지하철 출근길은 더욱 견디기 어려운 고행길이 되었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언론들도 시민들이 출근전쟁을 위로라도 하듯 장애인단체의 시위 때문이라는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월 5일자 <서울경제>는 인터넷판에서 <1년 계속된 장애인단체 출근길 기습시위... “굳이 출근길에 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지하철 운행 지연으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을 불편을 기사화했다.

그 외에 대부분의 언론들도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기사는 ‘장애인단체’와 ‘지하철 지연’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요즘 출근길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어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데, 그 이유는 ‘장애인단체’의 ‘시위’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통신사인 뉴스1의 <장애인 연일 지하철 시위로 출근길 시민들 발 동동... 3호선 또 연착>(2월 8일)과 뉴시스의 기사 <계속되는 장애인단체 시위...지하철 5호선 지연>(2월 14일)도 지하철 운행 지연으로 출근길 시민들의 불편의 원인이 장애인단체의 시위 때문이라고 단정했고, <매일경제>의 경우 지난 1월 28일 관련 기사를 속보로 내보내면서 ‘장애인단체 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서울교통공사의 입장만을 기사화했다. 

시민 불편만 강조한 장애인 지하철 출근길 시위 보도.
시민 불편만 강조한 장애인 지하철 출근길 시위 보도.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사회현상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라는 점을 얼마든지 이해한다고 해도 지하철 운행 지연 기사들은 ‘왜’라는 이 단순한 의문조차 없다.

‘장애인단체의 시위’가 ‘지하철 운행 지연’의 원인이고, 그래서 수많은 ‘시민들’이 출근길에 불편을 겪는다는 언론들의 부추김 덕분에 시위에 나섰던 장애인단체인 전국차별철폐연대의 홈페이지가 사이버 테러로 다운되었고, 시위하는 장애인단체를 처벌하라는 국민청원이 뜨는가 하면 한 시민은 전국차별철폐연대 사무실에 찾아가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했다고 <한겨레신문>은 2월 15일자 기사를 냈다.

장애인단체의 시위로 무고한 시민들이 출근길 불편을 겪고 있다는 기사들을 앞다퉈 내던 그 수많은 언론들은 자신들이 옹호했던 ‘불편을 겪는 무고한 시민들’이 ‘혐오’와 ‘차별’로 무장한 채 장애인단체를 공격하자 모르쇠로 돌아서고 있다. 고소(苦笑)를 금치 못할 일이다. 

언론들이 대변한 비장애인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은 사실 장애를 가진 시민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한 결과로 이뤄진 그들만의 평화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각하지 않는 비장애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은 장애를 가진 시민이 열등한 존재여야 가능한 셈이다. 감히, '병신'(장애라는 비정상성을 가진 자들)들이 우리(비장애란 정상성을 가진 자들)의 권리와 동등해지려고 하는 그 괘씸한 시도는 그래서 언론들에게는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먹잇감이다. 

언론들이 출근길 비장애시민 수백 명, 수천 명이 지하철을 타고 내린다고 해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지 않는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시민 수십 명이 지하철 승하차를 반복한다고 해서 운행이 지연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부실한 지하철 운행 시스템 속에서 인구의 5%나 되는 장애시민들은 어떻게 출근하면서 생계를 이어갈까 알려고 하지 않으며, 265만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며칠째 이어지는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로 겪는 자신들의 불편을 어쩌면 평생 견디고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문조차 하지 않는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권리, 배제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함께’ 누리자는 장애시민들의 하소연이 언론을 통해 ‘억지’와 ‘민폐’로 해석되는 천박한 태도 대신에 서로의 연대를 통해 환대와 지지를 받는 언젠가의 그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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