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이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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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이별의 시간
29년 결혼 생활을 마친 부부... 이별한 뒤 보이는 것들
  • 신지혜 시네마토커
  • 승인 2022.02.25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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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스틸컷.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진행] 남편과 아내. 29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 온 두 사람은 지적이고 차분하고 안정 되어 보인다.

남편 에드워드는 세심하고 배려심이 깊어 보인다. 긴 세월 함께 해서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아내의 눈빛만 봐도 아내의 손끝만 봐도 무엇을 찾는 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 지 바로 알아채고는 아내의 곁에 필요한 것을 놓아주곤 한다. 그런 남편을 향해 아내는 눈부시고 다정한 미소를 보낸다. 아내 그레이스는 시선집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학자인 남편을 향한 신뢰와 애정이 얼굴에 드러난다.

두 사람은 참 많이 다르다. 아내는 독립해 살고 있는 아들이 늘 보고 싶다. 이번 주말에는 오려나, 많이 바쁜 듯 하지만 그래도 짬을 내어 와 주면 좋을 텐데 싶다. 남편은 아내가 그럴 때마다 말한다. 아들도 이제 다 컸고 누구나 자기만의 삶이 있는 것이라고. 그 각자의 삶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주말에 아들이 오기로 했다. 아내는 살짝 들뜨고야 만다. 반갑고 보고 싶은 아들. 자주 오라고 보챌 수 없으니 이렇게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무나 좋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덤덤하면서도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사실 남편은 아내와의 삶이 버겁다. 여태 큰 잡음 없이 잘 지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내가 부담스럽고 아내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무겁다. 

그런 그에게 숨을 돌리게 해 주는 여자가 생겼다. 이번 주에 아들이 오는 것도 그 이야기를 꺼내고자 남편이 만든 자리이다.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는 아내는 그저 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들떠 있고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착잡하다.

아들이 오고 이른 아침 남편은 아들과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꺼낸다. 아들은 분명 마음에 소용돌이가 일었겠지만 아버지의 마음과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내는, 예상했다시피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게 세 사람이 함께 해 온 삶의 방향이 나뉜다. 사랑이라는 것은 실제로 유효기간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유효기간이 없다면 우리의 심장이 견딜 수 없다지 않은가. 그래서 적당한 시간이 흐르고 사랑은 종말의 시간을 맞게 되는 것이 순리인가 보다. 하지만 가슴 뛰는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고 그 사랑은 다른 형태로 우리 사이를 묶어 주기 때문에 우리는 또 함께 살아나간다.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스틸컷.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스틸컷.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부부로 살아온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들의 입장을 찬찬히 들여다 보게 된다.

남편은 아내의 많은 부분을 미리 알아채고 챙겨 줄 정도로 세심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그런 그이기에 아내와 자신이 많이 다르고 그 다름이 점점 벌어지고 있음을 일찌감치 깨달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켜야 할 것, 함께 해야 하는 것, 약속 등을 생각하며 시간들을 견디어 온 것은 아닐까. 그것이 어쩌면 그 남자가 아내를 사랑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아내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넘치는 사람이다. 아내는 자신과 남편이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잘 살아 나갈 수 있고 잘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이 어쩌면 그 여자가 남편을 사랑한 방식이겠다.

아들은 아버지가 떠나가고 빈자리를 슬쩍 채운다. 정작 자신은 너무나 바쁜 여자친구와 얼굴 볼 시간도 없는 상황이지만 어머니의 빈 마음을 채워 주러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집에 온다. 그러면서도 아들은 아버지의 선택과 결정과 새 일상을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그것이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각 사랑하는 방식일 것이다.

긴 세월 경험으로 익숙해짐과 버거워짐을 느껴본 사람들이구나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정과 이성을 분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고 이성적인 판단과 감정의 골을 메우기가 쉽지는 않았을 테니.

사랑이라… 정말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랑은 과연 같은 방향에 놓여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사랑의 형태 중에 내가 들고 있는 사랑은 과연 어떤 것일까. 

에드워드와 그레이스는 운명처럼 만났다. 젊은 나이의 남자가 아버지의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 우연히 같은 기차를 탄 여자가 시를 읊어주며 남자의 상황과 심리를 정확하게 판단해 남자의 마음에 작은 위로를 심어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여기서 영화가 끝났다면 우린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는 생각을 품었겠다. 하지만 그렇게 영화처럼 운명처럼 강렬하게 이어진 두 사람은 너무나 달랐고 메울 수 없는 간극을, 알아챌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영화는 슬프지 않다,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삶이 있어, 식의 엉뚱한 격려를 해 주지도 않는다. 그저 삶의 방향이 바뀌어 버린 남편와 아내, 아들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준다. 모든 것은 이처럼 지나가고 모든 것은 새 자리를 찾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하나 더. 영화의 배경을 잡아 주고 주인공들의 내면을 대변하는 모차르트의 곡과 그레이스가 읊는 시들은 이 영화의 품격을 더욱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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