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관계의 기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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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똑 닮은 인간관계 묘사로 호평받는 JTBC '기상청 사람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북태평양 기단과 오호츠크해 기단이 세력 다툼을 하는 여름날씨. 교과서로 잠깐 봤던 기단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물론 교과서 내용 속에서 기단은 그 부딪침으로 비를 내리게 하거나 어느 한쪽의 점령으로 열대야를 일으키는 날씨의 원인으로 설명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것이 인간관계로도 은유된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가 가진 색다른 접근방식이다.

기상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사내연애’를 메인 스토리로 삼고 있지만, 인간관계를 날씨에 비유해 풀어내는 관점 때문에 <기상청 사람들>은 독특한 시점을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변화하는 날씨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그 흐름을 객관적인 지표에 맞춰 들여다보듯, 인간관계 역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를 좀 더 메타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시점이다. 

한기준(윤박)과 10년을 사귀었지만 결혼을 앞두고 파혼을 당한 진하경(박민영)은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시우(송강)와 다시는 하지 않으려 했던 사내연애를 시작한다. 한기준은 바람이 났던 채유진(유라)과 결혼하고, 이들은 모두 기상청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매일 같이 부딪치며 감정의 파고를 겪는다.

하지만 진하경과 이시우의 달달하기만 할 것 같던 연애전선이 갑자기 냉각기로 돌아서게 되는 건 이시우가 ‘비혼주의자’라는 사실을 진하경이 알게 되면서다. 또 파혼까지 하고 채유진과 결혼한 한기준은 이제 행복만 남은 줄 알았는데 매일 같이 아내와 부딪친다. 사실은 성숙하지 못한 한기준 자신의 문제가 크지만, 그로 인해 신뢰를 갖지 못한 채유진이 결혼신고를 하지 않자 둘 사이는 더더욱 멀어진다. 게다가 채유진이 한때 이시우와 동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기준은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기상청 사람들>이 날씨에 은유해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메타적 시점으로 이 관계의 기상학을 들여다보면, 실로 인간관계라는 것이 뭐라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부딪침과 화해의 연속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파혼을 당한 후 봄날에도 눈이 내리는 이상기온 같은 아픔을 겪었던 진하경은 이시우라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 따뜻한 봄을 맞이하지만, 그가 비혼주의자라는 사실 때문에 어느 덧 그 관계를 봄을 지나 숨 막히는 열대야 속으로 들어간다.

한편 결혼 후 그 현실 속에서 매일 같이 부딪치던 한기준과 채유진(유라)의 냉랭했던 관계들은 급기야 채유진의 ‘별거 선언’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관계의 변화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신념이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시우가 비혼주의라는 사실을 알고는 한번도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는 의심을 해본 적 없는 진하경은 진짜 결혼생활이 무엇을 바꾸는가가 궁금하다. 이시우는 그런 진하경의 변화를 느끼며 자신의 비혼주의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JTBC '기상청 사람들'
JTBC '기상청 사람들'

<기상청 사람들>에는 이들 말고도 다양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래도록 기상청 일로 떨어져 지낸 탓에 가족과 소원해져 밖으로 떠도는 엄동한(이성욱), 현실주의자이자 개인주의자로 홀로 살아가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진태경(정운선)과 묘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신석호(문태유), 능력자였지만 결혼 후 출산, 육아에 남편 뒷바라지로 가장이 되어 점점 버텨내는 삶을 살아가는 오명주(윤사봉) 같은 인물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누구는 너무 자기 생각만 하고, 누구는 지나치게 자기희생을 하며, 누군가는 가족에 대한 상처 때문에 비혼주의이고 누군가는 마치 당연한 듯 결혼을 연애의 끝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는 화창한 봄날만 있는 건 아니다. 흐린 날도 있고 때론 태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기상청 사람들>은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 우리 각자가 겪고 있는 어떤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아마 지금도 어떤 관계의 어려움을 겪어 앞으로도 흐린 날만 계속 될 거라 절망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드라마가 관조적인 위로를 줄 수 있을 게다. 날씨처럼 변화하는 관계들을 보다보면, 언제든 추운 겨울만큼 봄은 오고 또 지나가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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